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공간의 발견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일 년 반 동안 지속되고 있다. 매일 신규 확진자 수가 500명 안팎을 오가며 전쟁만큼 사납게 일상을 할퀴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은 의외로 평온하다. 버스와 지하철은 여전히 제시간에 맞춰 잘 다닌다. 도시의 쓰레기는 남김없이 치워지고 수돗물은 끊기는 법이 없다. 전기는 전등도 잘 켜고 선풍기도 잘 돌린다. 문명은 여전히 바이러스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있다. 거리 풍경도 지나는 이들의 마스크만 빼면 별반 달라진 것도 없다. 다시 6월이 왔고 여느 초여름처럼 푸르고 하늘은 텁텁하게 비를 머금으며 무더위를 예고한다.

 

어둠 가운데서도 빛을 찾는 심정으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그 또한 없지 않다. 불필요한 모임이 줄었고 저녁 시간이 생겼다. 경조사는 뜻만 전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막히는 길을 오가며 참석하던 회의는 서면이나 화상으로 대체된다. 이전의 일상이 아쉽기도 하지만 대면을 고집했던 모임의 방식이 시대에 뒤처져 보이거나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공간이다. 여러 층위에서 공간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비대면이라는 뉴노멀이 가져온 미래의 조각이다. 우선 일상 공간이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가구가 잘 팔리고 홈인테리어 업체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오래 머물게 된 주변을 되돌아보고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일상 공간의 복권이라 부를 만하다.

 

뜻밖에 발견하는 공간도 있다.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피하고 운동 삼아 걸어 올라가는 아파트 계단실은 새롭다. 소리가 울리는 좁고 높은 공간의 경험은 낯설고 신기하다. 방화 철문 뒤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다시 드러나는 듯하다. 집 뒤 작은 공원도 다르게 보인다.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공간을 구석구석 살피게 된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공간 경험도 있다.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에서나 활용하던 미래 기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재택근무 같은 생활양식도 함께 왔다. 기술은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령 화상회의나 원격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작은 섬네일이 돼 정렬된다. 그 안에는 일상의 삶과 개인의 우주가 들어 있지만 주인공과 배경은 모두 편평해진다. 큰 덩치 지니가 요술 램프에 갇힌 듯 공간은 생기를 잃고 모니터에 숫자와 문자로 표시될 뿐이다. 수업에 출석한 학생들과 교수는 장소 없는 장소에서 만난다. 애써 만든 모형을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학생은 모니터에 갇혀 있다. 모형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돌려보고 무게를 느끼던 교수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같은 공간에 있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말을 걸어본다. 하지만 0.1초도 안 되는 짧은 지연이 서로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의사소통의 배경으로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원격 비대면 소통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상공간은 자연스러운 요구다. 게임의 영역에서 가상공간은 오래전부터 필수적인 조건이 됐다. 현실과 유사한 공간을 배경으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신나는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게임이 가상공간의 시초다. 현실성은 강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가상공간이 현실에 역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실제 건축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가상공간에서나 가능한 새로운 형태와 공간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현실 건축이 가상공간의 특성을 모방하게 된 것이다. 유연한 곡면과 가벼움과 불안정한 형태와 가변성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가상세계 건축이 인류에게 수평 수직으로 익숙한 공간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과 대비된다. 가상과 현실이 서로를 욕망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게임 공간의 건축학’의 저자인 스위스 건축가 안드리 게르베르는 “가상세계가 인류의 감각과 관념의 지평을 확장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가상공간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로부터 건축은 더욱 풍부해질 테니 말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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