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슈&인사이트] '이준석 현상'이 대한민국을 바꾸려면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36세 청년’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를 거머쥐자 기성 정치권의 견제와 질시가 드세다.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법 반대가 기득권 옹호라든가, 하버드를 나온 자신처럼 능력 있는 사람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여성할당제에 반대하는 것을 두고도 젠더갈등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따른다. 심지어 역대 대통령 묘역을 조문하며 쓴 방명록의 글씨체를 비판하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꼬투리만 있으면 어떻게든 이 대표를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야당 측에서도 그에 대한 견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다. 자료해석, 컴퓨터 능력 등 몇몇 기준으로 시험을 실시해 최소한의 성적을 넘어야만 공천하겠다고 하자 시험성적 좋은 사람이 정치도 잘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비판이 따른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공천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성 정치의 문법은 그게 아니다. 그 동안 공천 받으려고 정치판을 쫓아다닌 세월이 얼만데 갑자기 시험을 보겠다니, 이게 공정이냐 싶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를 대하는 이 대표의 당당한 태도다. 자유로운 경쟁이야말로 공정한 결과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 부문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못해 지배적인 분야도 많아 할당제가 오히려 유능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한다. 그의 대표 선출을 계기로 국민의힘 입당 신청자 수가 급증하고, 특히 호남에서도 당원의 수가 급증해 온라인 시스템이 두 차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이 대표 당선 전과 후 신입당원의 수가 50% 증가했고, 강원도당의 온라인 입당자 수는 무려 14배 증가했다고 하니 가히 이준석 현상은 돌풍을 넘어 태풍의 수준으로 격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기성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며 이준석 개인보다는 그를 통해 대표되는 낡은 정치의 청산 요구이며 새 정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이준석 현상이 국민이 바라는 정치혁신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파괴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자유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경쟁을 신봉하는 이 대표의 당당한 태도와 "말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예술"이라는 주장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중도적 유권자는 물론, 반대자들까지 설득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스스로 엄격하게 원칙과 상식을 지켜가는 데 달려있다. 자신은 서슴없이 반칙하면서 남에게만 엄격한 원칙을 요구하는 사람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결과의 평등 보다 기회의 평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경쟁하고 그 차등적 결과를 누릴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 공정한 사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힘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는 이웃들을 보듬어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꿈이다.


보수우파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낸 선열들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치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봉사이고 희생이다. 이것이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2021년 보수우파가 87년 체제 이후 입으로만 공정을 외치면서 스스로 특권 집단이 된 좌파 운동권 인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한 가지 신보수우파가 명심해야 할 것은 초심을 잃지 말고 항상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하며,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누구나 나설 때가 있으면 반드시 물러날 때가 있는 법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오늘날 좌파운동권 세력의 몰락이 곧 미래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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