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러시아 가정의 날의 아름답지 않은 이면 / 강윤희(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


지난 달 1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의사당 앞에서 열린 성 소수자(LGBT) 권리 시위에서 한 여장 남성이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AP 뉴시스

 

지난 8일은 러시아 가정의 날이었다. 러시아는 2008년부터 가정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해서 기념하고 있는데,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정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한 나라는 러시아뿐이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의 독특한 국경일에는 소련 시절부터 내려오는 국제여성의 날이 있다. 러시아 남성들은 3월 8일이 되면 어머니, 할머니, 스승, 동료, 친구 등 자신의 주변 여성들에게 꽃과 선물을 준다. 때로는 소박하게 카네이션 한 송이로 감사와 존중의 마음이 표현되곤 한다. 따라서 국제여성의 날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성 간의 사랑 고백을 전제로 한, 상업화된 밸런타인데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달달한 사랑을 논할 가정의 날이 별도로 필요했던 것일까?

 

'가정, 사랑, 충실의 날'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이 국경일은 상당히 보수적인, 러시아적인 가족관을 담고 있다. 가정의 날이 러시아정교회의 성 표트르와 훼브로나의 축일과 같은 날로 지정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성 표트르와 훼브로나는 결혼과 가정의 수호성인이며 사랑과 충실의 상징이다. 러시아 중세 무롬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계급을 뛰어넘는 진실된 사랑,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고 유지된 결혼과 가정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의 날이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과 결혼 생활을 표상하고 있다면, 그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자연스럽지 않은,’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사랑과 결혼 관계에 대한 강한 부정이 들어 있다. 단적으로 말해, 동성애에 대한 반대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 차별 금지를 전 세계적으로 촉진 중인 유럽의 인권 외교,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유럽 ‘문화 제국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혁신적인 젠더 정책을 펼쳤던 소련 시절에도 동성애는 범죄 행위였다. 동성애는 1993년에 와서야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인 대다수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혐오 범죄 등이 다수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동성애 문제에 대해 매우 억압적이다. 러시아 LGBT 그룹들이 모스크바 퍼레이드를 조직하려 했을 때 허가를 안 내주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이유를 들어 LGBT 권리 옹호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벌주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일례로 러시아 페미니스트 펑크 록 그룹 푸시라이엇은 작년 푸틴 대통령 생일을 맞아 러시아연방보안국, 러시아 문화부 앞에 LGBT 권리 옹호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거는 항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 사건으로 관련 멤버들이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러시아 정부는 동성애 확산을 막을 법적 조치들을 취하였다. 2013년에는 미성년 대상 동성애 프로파간다 금지법이 제정되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어린이들에게 비전통적 성관념(동성애)을 형성하거나 이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정보를 유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법률이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러시아 국내외에서 일어났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소치 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작년에 있었던 헌법 개정은 결혼과 가정에 관한 보수적 견해가 명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정 헌법은 아예 이성 간의 결혼만을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한다고 못 박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가정의 날은 가정과 결혼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확고히 하고 널리 전파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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