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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락 칼럼] '한미훈련 중단' 김여정 하명에 연판장 돌리면서 '자주'를 주장하는가 [08.10] [뉴데일리]

 

▲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뉴데일리 DB

 

범여권 국회의원 70여명이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촉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남북 통신연락선 복구를 계기로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미연합훈련이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북한의 김여정이 주장하는 바는 그들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김여정은 "통신연락선들의 복원은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 뿐"이라면서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남한에서 "그 의미를 확대해"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문제까지 여론화하고 있던데 나는 때이른 경솔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남북한 간 직통선 복원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선전한다. 그러나 김여정의 말처럼 단절된 선을 연결시켰다고 해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대표들이 수화기를 들고, 어떤 의제를 정해 서로의 입장을 교환하면서 논의를 추진해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한이 통신선이 없어서 소통을 못한 것도 아니다. 남북대화의 의지가 강하고 내용이 좋다면 며칠이 걸리는 편지로도 소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당연히 중요한 중요한 것은 통신선이 아니라 북한이 남북대화를 위한 의지와 내용을 갖고 있느냐는 것인데, 김여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대화가 될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 판단인가?

 

국회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면서 나선 것은 남북대화를 지속하기 위함이 아니다.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지난 3일 담화를 발표해 "며칠 간 나는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협박했다.

 

김여정은 무례한 용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하면서 남한에게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하는 70여명의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그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여정의 말을 수용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라도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사정이 있는가?

 

박지원 국정원장이 한미연합훈련의 제안 필요성을 언급하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원이 "김여정 하명기관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연판장에 서명한 국회의원들에게도 적용돼야할 것 같다. 국민의 대표라고 자임하는 국회의원들이 김여정이 요구한다고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자고 말하면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러면서 미국에 대해 자주를 말하는가?

 

북한에서 귀순해 지난 해 4월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당선된 태영호 의원의 말을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을 통해 "김정은 남매의 협박에 굴복해 한미 연합훈련을 중지한다면 당면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잃는 것은 물론, 영원히 북핵을 이고 사는 '북핵 인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김여정의 하명 같은 요구에 더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지난 4일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우리가 훈련을 한다고 해 남북대화가 끊어지거나,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해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대화의 의지만 있다면 훈련을 실시하더라도 얼마 후 대화가 재개될 것이고, 이것이 지금까지 남북대화가 겪은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미연합훈련을 남북 대화의 종속 변수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계속 이 프레임에 갇혀서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태 의원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주장이고, 대부분의 상식이 있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바가 아닌가?

 

그런데 김여정이 이번에 훈련중단을 요구한 것을 이전에 현 문재인정부에 대해 온갖 상스러운 말을 쓰면서 강압한 것과 결합시켜 보면, 이제 남한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여정급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한은 미국의 괴뢰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대해보니 아무런 배알도 없이 북한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가 관리해야할 수준에서 제외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은 한반도 전체의 수뇌가 김정은이고, 우리 대통령은 남한의 수뇌라고 주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남북 정상 간 회담을 하면서도 '정상회담’이라는 말 대신에 '수뇌상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북한의 형식적 수뇌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대동하고 세 수뇌가 모이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자신들의 논리를 형식적으로 충족시키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남북 정상이 대등하게 만나 논의하는 것을 수용했다. 그래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과 '도보다리 산책,’ 그리고 그해 9월의 평양 회담이 대등한 모습으로 진행된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현 정부와의 수년 간 경험을 통해 북한은 이제 남한을 더 이상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2인자라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노동당 부부장에 불과한 김여정으로 하여금 남한을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반문할 것이다. 그러한 형식에 구애받은 나머지 남북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인가라고. 필자도 재반문하고자 한다. 4년여 동안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채 노력해서 남북대화가 잘되고 있느냐고.

 

굴종이든 뭐든 상관없이 북한에게 매달렸지만 현 정부가 4년여의 대북정책을 추진한 결과로 달성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는커녕 북한의 핵무기 증강 시간만 부여했다. 남북 간에는 정부와 국민 간의 교류는 물론, 물자 하나 제대로 교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 간에도 의전이 전혀 무시할 수 없지만, 각국 정상이나 대표자들 간 회담에서 의전을 실질적인 내용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것은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여정급으로 추락하여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과 직접적인 대화도 못하면서 남한이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적지 않은 문재인정부 인사들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훈련을 간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훈련은 싸워 이기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훈련이 없으면 싸워서 이길 수 없고,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평시 군대에게는 훈련과 군대는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전시에 군대의 작전을 통제하는 권한이 주권의 중요한 부분이듯, 평시에는 훈련이 주권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즉 북한이 요구한다고 해 훈련을 중단·축소하는 것은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중국까지 나서서 우리의 훈련중단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주권이 동네북이 된 셈 아닌가?

 

정부에게 촉구하고자 한다. 훈련을 한번 실시해보라. 다음에는 더욱 규모도 크고, 대규모로 실병력을 동원한 훈련을 실시해보라. 그러면 북한이 도발하는 지 하지 않는지를 알 것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 행위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북한의 수많은 도발을 허용하고 인내해왔는데, 훈련의 대가로 도발당하면 덜 억울할 것 아닌가? 북한이 도발하면 싸워서 지켜야 하고, 그렇게 하고자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주권을 양보해가면서까지 싸움을 회피하려는 자세로 어떻게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가 훈련을 적극적으로 실시할수록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상대방이 충분히 대비돼 있는 상태임을 알고 도발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다음에는 북한이 남침하면 그것을 격퇴할 뿐 아니라, 바로 반격해 북한 전체를 석권한다는 개념으로 훈련을 실시해보라. 그리고 한미 양국군을 동원하여 그러한 의지와 역량을 과시해보라. 한국이 요구하기도 전에 북한이 먼저 한국과의 대화를 요구할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자 연판장을 돌리고 있는 사이, 청주에서는 간첩사건이 발생했다. 청주 지역 노동단체 출신 4명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을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지령과 보고문, 2만 달러 활동비의 수령과 충성 맹세 취지의 혈서까지 발견했다고 한다. 그 중 3명은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연판장에 도장을 찍은 국회의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거처럼 현 정부가 조작했다고 말할 것인가? 북한에게 어떤 약점을 잡힌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김여정에게 항의하는 연판장을 다시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독일과 베트남이 패망한 이후 다수의 고위인사들이 간첩이었음이 드러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필자만일까?

 

단채 신채호 선생은 혼이 없는 민족은 영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북한에게 혼을 뺏기고 있다. 아니 혼을 스스로 내주고 있다. 남북대화라는 허상에 매알려 정부는 국가안보에 전념하지 않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은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다.

 

젊은이들은 안보에 무관심하고, 어른들은 부정선거 등 엉뚱한 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지만 안보는 토론 의제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고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고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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