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 사람을 찾습니다 #6] 구두가 좋은 구두 디자이너 맹유나씨를 만나다

 

얼마 전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선아가 구두업계 최고의 디자이너, 수석 디자이너에 대기업 이사, 미모의 골드미스 그리고 결혼보다 일이 좋아 구두에 인생을 바친 슈어홀릭 황지안으로 등장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가 방영을 마쳤다. 여자라면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좋아하는 구두, 패션의 완성 구두. 방 한 가득 내 구두가 진열되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번 그 사람을 찾습니다 코너에서는 여자들의 로망인 구두가 좋아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맹유나(공업디자인 07학번) 동문을 만났다.

 

Q. 여자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게 구두잖아요. 그래서인지 구두 디자인하면 뭔가 로망인 것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구두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동안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그냥 구두가 좋아서' 인걸까요? 스무 살 때 처음 하이힐을 신고 그때부터 쭉 구두를 좋아하고 관심 갖는 것을 보면 '구두에 첫 눈에 반했다' 고 할 수 있겠네요. 여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하이힐 등 구두를 신었을 때 생기는 이상한 자신감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구두를 신던 스무 살 때는 정말 열심히 구두만 신고 다녔어요. 게다가 굽은 높을수록 좋았어요. 발이 아프다거나 힘들지도 않았나 봐요. 지금은 많은 고단한 일들을 많이해야 해서 사실 조금 힘들긴 하지만요. (웃음)

 

Q. 처음 구두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접하게 되었을 땐 어떠셨나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1년 간 휴학을 했었는데, 그때 구두와 가방 디자인 학원을 다녔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4시간씩 하루도 안 빠지고 10개월을 다녔으니 학교를 다닐 때만큼 바빴어요. 물론 과제도 있고 마지막엔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몇 날 며칠 밤도 샜죠. 학원 가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는 성수동의 가죽, 굽, 장식 집을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새로 나온 가죽이나 원단은 스와치로 잘라서 모으고 신상 장식이나 굽도 사거나 얻어서 디자인도 구상하느라 하루가 구두 생각으로 가득했었어요. 확실히 발품 다리품 팔며 직접 다니는 게 많은 공부가 되더라고요. 책에도 학원에도 없는 그런 산 지식이랄까요? 저만의 노하우가 쌓이는 듯해서 힘들어도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모은 것들이 방 한 가득 쌓여 있고, 제 꿈을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아요.

 

 

Q. 구두를 고를 때 혹은 만들 때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하이힐을 살 때만큼은 꼭 좋은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찾아요.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일은 절대 없고 구두 매장에 나가서 몇 번이고 신어본 뒤에 정말 편하다고 느끼는 것만 구입해요. 구두는 예쁜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이 편해야 진짜 잘 만든 구두거든요. 제일 아끼는 구두가 한 켤레 있어요. 구두 앞코는 빨간색이고 뒤쪽 굽으로 갈수록 검은색으로 그라데이션처리 된 하이힐인데요. 9cm의 높은 힐인데도 플랫슈즈보다 편해서 하도 신고 다녔더니 닳고 닳아서 결국 똑같은 구두를 새로 구입했어요. 아직까지도 제 신발 중엔 그만한 게 없어서 애지중지하고 있죠.

 

Q. 보그걸 잡지에서 인턴쉽 챌린지를 지원하시고 또 뽑히셨다고 들었어요. 합격 후 슈콤마보니라는 곳에서 인턴 생활을 하셨죠?

저희 언니가 보그걸 잡지를 보고 지원 일정을 알려주었어요. 마침 만들어놓은 포트폴리오도 있겠다, 4학년 시작하기 전 방학 때 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아서 지원했죠. 서류심사 후 며칠 뒤 보그걸에서 면접 날짜를 알려줬어요. 그 때부터 '슈콤마보니' 구두란 구두는 샅샅이 뒤져 조사했어요. 포트폴리오도 그 브랜드 스타일에 맞춰서 조금 변형해 갔어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준비 했고요. 다행이도 예상 질문을 많이 적중(?) 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번 시즌 트렌드', '좋아하는 구두 브랜드', '성수동 부자재 가게들은 많이 알고 있는지', '추구하는 구두 스타일' 등 포트폴리오도 좋게 봐주셔서 실장님께서 면접 당일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그러셨어요. 열심히 준비해간 보람이 있더라고요. 여담으로, 면접은 정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그래도 구두 디자이너로 면접 보러 가는데 어그 신고 들어갈 순 없잖아요. 따뜻한 부츠신고 갔다가 건물 앞에서 하이힐로 갈아 신고 들어갔어요.(웃음)

 

 

Q. 경쟁률이 셌던 걸로 아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인턴 기간을 얼마나 되었나요?

슈콤마보니에서 인턴은 애초 예정됐던 기간이 한 달이었는데, 개학하기 전까지 두 달 동안 했어요. 그 두 달 동안 거의 매일을 야근했어요. '디자이너=야근'이란 생활이 몸에 뱄던 시기였어요. 어떻게 이렇게 끊임없이 일이 많을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다들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브랜드가 잘 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남들이 그렇게 하는데 제가 열심히 안 할 수가 있나요. 추운 겨울날 가죽/구두 창고 내부는 눈 내리는 바깥보다 더 추워요. 손이 시려 호호 불어가며 작업을 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언제 이렇게 많은 가죽과 온갖 브랜드의 구두들을 구경할까 싶어 창고에 붙어살았어요.

 

Q.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했었나요? 인턴도 디자인을 할 수있나요?

제 주요 업무는 앞으로 나올 다음 시즌 구두 라인 리스트를 정리하고 거기에 쓰이는 가죽과 그 외 소재, 장식 등을 정리해두는 것, 디자이너 선배와 공장 따라다니며 샘플 가져오고, 만들어진 구두가 백화점에 들어가기 전에 검품하는 일……. 인턴 한 달 정도 지나선 작업지시서도 만들고 구두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역시 그 일이 제일 좋았어요.

 

Q. 인턴을 통해 채득한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은 무엇이가요?

디자이너는 아이디어가 풍부해야하고 그림을 잘 그리면 더 좋죠. 그런데 구두 디자이너에게 또 하나 플러스 요인이 되는 점이 있다면 발 크기가 샘플 사이즈(235mm)인거에요. 구두 샘플이 공장에서 나오면 누군가 신어보고 수정할 사항을 찾는데 직접 신어보면 그보다 좋을 수 없어요. 제 발 크기도 딱 235mm여서 품평회 때는 슈콤마보니 신상 구두를 신고 각 매장 매니저들에게 선보이는 일명 '발 모델' 역할도 했어요. 모두 제 발만 쳐다보는 게 민망한 일이긴 해도 신상 구두를 제일 먼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신어 볼 수 있다는 건 영광이었죠.

 

 

Q. 구두 디자이너로서 일하면서 잊을 수 없던 에피소드에 대해 듣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다"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전문용어로 핫픽스라 불리는 보석으로 뒤덮인 구두가 있었어요. 공장에서 구두가 제작되어 나오지만 아무래도 기계는 사람 손보다 정교하지 못해서 가장자리 부분에는 보석이 부착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 많은 구두에 핀셋으로 지름 2mm의 보석을 일일이 붙이는 작업을 했어요. 그것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생각 없이 하다간 비싼 구두 하나 버릴 수 있으니! 온 정신을 핀셋 끝에 집중해 작품 아닌 작품을 완성했었죠. 정말 힘들긴 했지만 뿌듯한 기억이에요. 즐거운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사실 '때려치우고 싶다' 거나 '정말 하기 싫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더해봐라. 한 달만 더 일 해보면 그런 말이 자다가도 나올 거다' 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선배들도 있었어요. 그만큼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저에게 그 두 달은 정말 짧고 아쉬운 시간이었어요.

 

Q. 앞으로 어떤 구두를 만들고 싶으세요?

나중에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면 기본에 충실한 구두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제가 굉장히 수수한 편이라(정말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녀요. 화장도 거의 안하고. 이제는 좀 꾸며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랍니다.) 화려하지 않고 기본 라인이 예쁜 구두를 좋아하거든요. 구두를 옆으로 세워두고 봤을 때 앞바닥부터 뒤로 올라가는 곡선이 예쁜 구두요. 그래서 저도 화려한 장식보다는 가죽 색상이나 특별한 소재로만 포인트를 주는 구두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Q.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디자인 공부하는 학생들 참 많죠. 특히 우리 국민대 디자인과 학생들 아마 야간작업 하느라 고생 많이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게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그만큼 많은 디자인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축복받은 사람도 있겠지만요!) 저는 오히려 집중해서 뭘 좀 해보려 자리 잡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보다 잠깐 쉴 때, 밥 먹을 때 혹은 정말 별 생각 없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이 더 많아요. 여행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이나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건지게 되더라고요. 어떤 분야를 전공하던지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개중에 디자이너에게는 특히 중요한 거 같아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디자인 공부하는 학생들 많이 노세요! 여행 많이 다니세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들으세요.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 되니까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젋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 등 고생에 관한 속담과 관용구는 참 많다. 하지만 대부분 노력하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맹유나 동문도 인턴이란 짧은 기간 매일 매일 현장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고생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며 자아실현의 보증수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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