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 사람을 찾습니다 #10] 손건익 석좌교수 (전 보건복지부 차관)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전공 석좌교수로 전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한 손건익 교수님이 임용되었다. 손건익 교수님은 공직에 머무를 당시 바른 말과 강직한 태도를 보여주기로 유명하였다. 때문에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말도 많은 교수님을 어느 화창한 오후에 볕이 잘 드는 집무실에서 만나 보았다.

 

 

 

1. 국민대학교 동문이시고, 잠시 직원으로 근무하신 경력도 있으셔서 석좌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신 지금, 감회가 무척 새로우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영광스럽죠. 또 설레죠. 모교로 돌아와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저한테는 오랜 숙원 사항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제가 행정고시를 볼 때, 총 3차로 나눠진 시험에서 1,2차는 무난히 통과했는데 3차 면접을 보고 떨어졌어요. 그러자 당시 총장이셨던 정범석 총장께서 국민대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어요. 그 때의 고마움이 아직도 가슴 깊이 느껴지는데 이렇듯 공직을 은퇴하고 나와서도 다시 한 번 모교에서 일할 수 있고, 후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모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2.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역임하시면서 주로 하셨던 주요 정책 결정이나 사업이 계시다면 몇 가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생활부 과장으로 역임하면서 98년부터 2000년도까지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를 도입하는 데 총괄을 했습니다. 또 치매를 앓고 계신 노인 분들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께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 장기 요양 보험제도'를 도입했고요. 정책 총괄 국장으로 있으면서는 제 1차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처음 수립했습니다. 복지부 차관 때는 OTC(OVER THE COUNT) 의약품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일반의약품 중 슈퍼마켓에서 파는 피로회복제 등은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는 구입하지 못했었는데 24시간 편의점에서도 기본적인 상비약을 팔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이죠. 더불어 약과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서 약과를 일괄적으로 14%를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했어요. 이런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약국을 비롯한 의약계의 반발이 있었지만 실제로 약국들의 경영은 어려워지지 않았고, 국민들의 불편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컨대 휴일에 약간의 미열과 신경통이 있다고 해서 병원을 가긴 힘든 일인데 그런 면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이 많이 해소되었지요.

 

3. 그간의 교수님의 행보를 보면 소신을 세운 직설적 화법과 때론 쓴 소리도 마다않는 곧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이렇듯 바른 삶을 이끈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저와 같은 사람은 정부 내에 아주 많아요. 오히려 저보다 더 훌륭하고 본받을 만한 분들이 공직에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는 그 수많은 분들 중에 꼽히기도 힘들고 그분들에 비하면 모범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름대로의 소신을 말하자면 공직자는 첫째도 둘째도 정직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했다", 실수를 했으면 "실수를 했다"고 깔끔하게 인정해야합니다. 물론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잘못을 해놓고도 그걸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한다는 건 결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공직자의 제일 큰 덕목은 정직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대학에서 공부할 때부터 지금까지 '처변불경(處變不驚) '이라는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 놓이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르게 해석해보자면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다.', '세상이 뭐라 하던 내 갈 길을 묵묵히 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다른 학교가 아닌 '국민대학교' 석좌교수로 오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11년 10월 이후부터 공직자들의 퇴직 이후 보직관리 혹은 취업관리가 상당히 엄격해졌습니다. 장관 이상을 역임했던 공직자들은 퇴직한 뒤 로펌이나 중견회사 이상의 큰 회사를 갈 수가 없게 되었죠. 때문에 본인이 창업을 하거나 학교 또는 정부산하기관에 몸을 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저는 모교로 돌아오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유지수 총장님과 동문회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고, 좋은 기회를 주신 만큼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5. 교수님께서 국민대학교에 재학하셨을 당시의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하나 꼽아보자면 무엇인가요?

4학년이 되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간 공부하고 시험 준비하느라 방학이나 휴가철에도 어디 놀러가 본 기억이 없더군요. 청춘을 이대로 그저 보낼 수 없어 행정고시 2차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치악산에 놀러갈 계획을 세웠죠. 반찬, 쌀, 텐트 등등 필요한 물품들을 각기 나눠서 준비하고 떠났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하 2~3도에 머물던 기온이 그 날은 영하8도로 떨어졌어요. 그래서 텐트를 가져오기로 한 친구한테 특별히 당부했죠. 여름텐트는 모기장이 보이니 이를 잘 구분해서 가져오라고요. 단단히 챙겨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의 말에 안심하고 산행을 떠났는데 텐트를 설치하려고 보니 떡하니 모기장이 보이지 뭡니까. 즐거운 야외 활동, 그것도 처음 떠났기에 한껏 기대에 찬 여행을 영하 8도의 치악산에서 여름텐트와 함께 보내고 말았어요. 얼어 죽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죠.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이젠 소중한 추억이 되었네요.


6. 그렇다면 그 때와 지금, 국민대학교의 가장 큰 변화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많이 달라졌어요. 중앙도서관이 지금의 조형대학으로 변했고, 예전 학생회관 건물은 법학관이 되었어요. 조형대학과 같은 예능계 대학이 상당수 늘어났고 경쟁력 있는 학과 역시 많이 생겼네요. 후배들도 아주 똑똑해진 것 같아요.

 

7. 앞으로 후배들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치시고, 전달하시고자 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요. 학생들이 저마다 공부하고 있는 학문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그것의 변화 추이를 읽고, 제대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서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겁니다. 뿐만 아니라 후배들과 고민도 함께 나누며 값진 시간을 보낼 생각이에요. 취업이나 생활 전반에 걸쳐 고민이 있는 학생이라면 부담 없이 제 집무실로 찾아와 주세요. 아무 고민이라도 좋습니다. 깊이 있는 상담, 면담,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해요.

학부생을 위한 면담/상담제도
- 법학관 229호
- 수요일 14:00~16:00

 

 


8. 국민대학교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면 기사를 본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성곡 김성곤 선생께서 "일하자 더욱 일하자 한없이 일하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빗대어 말해보자면 "생각하자.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하자"라는 것이 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지금의 학창시절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삶의 주체는 본인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을 위해 수십 가지 자격증을 따고 짧으나마 해외연수를 거치며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고 있죠. 그러나 무작정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즐거울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재밌고 행복할 것인가, 진짜로 내 적성에 맞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을 끝내면 노력하는 자세를 길러야 하죠. 퇴임식에서 후배들에게 "너무 혹독하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저는 일에 대해선 조금도 타협이 없었습니다. 국가는 충분한 시간과 인력과 예산을 주며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끝없는 변수가 생기는 상황에서 유일한 상수는 준비하는 자세밖에 없었어요. 제가 오로지 기대고 믿을 수 있는 건 실력, 즉 업무처리 능력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참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그 노력이 공직자로서의 행동거지나 태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요. 후배들에게 같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회는 만만하게 볼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넘지 못할 벽은 더욱 아니죠. 여러분 모두는 사회에 나가서도 얼마든지 잘 적응할 수 있어요.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임하는가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충분한 기회가 올 것이고 보란 듯이 그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취재 일정을 잡고, 인터뷰를 하고 마치기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손건익 교수님의 한결같은 '태도'였다. 교수님의 시간 낭비 없고 효율적인 일처리는 몸이 날쌘 젊은이들도 놀라게 만들 만한 것이었고 정확한 업무 처리와는 별개로 인터뷰 내내 미소를 보이시며 인자함을 잃지 않으셨다. 한 마디 한 마디 건네시는 말씀은 서로 어긋남이 없고 진솔하여 진득한 신뢰가 묻어났다. 매 질문의 답 끝엔 후배들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가 따라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후배들과 함께 할 수 있게끔 언제든지 집무실 문을 열어두마 하셨다. 국민대학교 학생 모두를 든든하게 지지해 주실 또 한 분의 은사님을 모시게 되어 그 분의 인터뷰 첫 말씀처럼 영광스럽고도 기쁜 오늘이다.

 

 

 

*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전글 [국민*인 책다방 #5]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다음글 일러스트 갤러리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