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국민대 태자리 - 낙원동 서북학회 회관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18) 舊 서북학회 회관…건국·단국·국민 3개사학 발상지







근대문화유산 제 53호 ‘서북학회 회관’의 역사를 찾아보면 “1908년 도산 안창호 등 평안도,함경도,황해도 출신의 신흥지식인 33인이 구국 정치활동과 문화계몽운동을 위해 조직한 ‘서북학회’의 회관”이라 돼있다. 당시 종로2가에 있던 한성전기회사를 모델로 삼아 지었으며 자리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정확하게는 현 낙원상가 뒤 왼편 부근이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를 찾아가면 4층짜리 지상주차장만 있을 뿐 옛스런 건물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다. 1977년,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건국대학교가 수익사업을 위해 그 자리를 개발하면서 헐린 뒤 서울 화양동 건국대 캠퍼스 내로 옮겨져 1985년 복원됐다. 지금은 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의 호를 따 ‘상허기념관’이라 불리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넓은 캠퍼스 안,세련된 위용을 자랑하는 신축 건물들 사이에서 3층 벽돌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나는 학생에게 “박물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겨우 떠오른 듯 일러준다. 박물관이 학교 내에 있는 줄 모르는 학생도 많을 것을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건국대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끝까지 올라가니 왼편 우묵한 곳에 서 있는 아담한 모양새의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가운데에 돔 지붕을 이고 돌출된 현관부를 중심으로 양편이 대칭된 예쁘장한 건물. 서북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청나라 건축기사까지 불러들여 지은 이 건물은 건축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온 지금,건물은 어느 사이에 제 나이에 걸맞는 조신한 품새를 배워두고 있었다.




외양으로만 볼 때는 실내 역시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칸칸히 나뉜 방들로 이뤄졌을 것 같지만 자리를 옮기며 구조를 대폭 변경한 탓에 내부에서는 초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쇠락하는 국운을 살리자며 새로 지은 이 건물에서 의지를 다졌을 서북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는 한층 어려웠다.




회관 건축 2년 후인 1910년,서북학회는 이 건물에서 신식교육기관인 오성학교를 출범시켰다. 같은 해 한일합병이 이뤄지면서 데라우치 총독에 의해 오성학교는 폐쇄되고 말았자민 서북인들의 의지는 이어져 이 건물은 이후로도 주로 교육시설로 사용됐다.




1918년에는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4년 동안 이 건물을 교사로 썼다. 보성전문이 자리를 옮긴 후에는 협성학교와 협성실업학교가 들어왔으며 이 역시 몸집이 커져 이사를 나간 1939년,당시 민중병원을 운영하던 유석창 박사에게 건물이 넘어갔다.




해방 후 한 때는 한민당 본부로도 사용됐다. 한국대학신문이 연재했던 ‘김우종의 대학비사’는 “오늘날 종로가 정치1번지로 불리게 된 원인은 낙원동 중심에 있던 이 건물과 천도교회관 등에서 당대에 내로라 하는 유명 정객들의 연설이 자주 열렸던 데 한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민당 또한 이사를 나간 후,유석창은 46년 5월 건국대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을 열고 학생을 받았다. 그와 비슷한 시기인 46년 3월,신익희 등이 주축이 돼 발족한 국민대학 설립 기성회도 마땅한 교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중 서북학회관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또 정치적 노선의 차이로 국민대 기성회에서 갈려져 나온 조희제와 장형 등은 1947년 6월,조선정치학관 교사 일부를 빌어 단국대학교를 개교했다. 같은 시기 한 건물에서 무려 세 개의 대학이 태동한 것이다.




한 교사에서 두 대학이 수업을 하다보니 잡음도 있었다. 뒤늦게 둥지를 틀은 단국대가 정식 대학설립 인가를 먼저 받는 바람에 조선정치학관 학생이 단국대로 편입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 문제가 됐고,두 학교를 합하자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1949년 9월 조선정치학관도 대학설립 인가를 받고,단국대가 그 해 12월 이사를 나가면서 일단락됐다.




한국 전쟁 후인 1956년 건국대가 현 캠퍼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건물은 건국대 야간부 및 법인사무실로 쓰였다. 이후 현재 자리로 옮겨져 박물관으로 쓰이면서부터는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수많은 학생들이 꿈을 키웠던 ‘낙원동 교사’ 시절은 역사 뒷편으로 흘러가버린 것이다.




건국대학교는 현재 박물관을 따로 신축할 계획이다. 이 건물로는 5000여점의 역사 유물과 학교 역사자료 등을 다 보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박물관이 신축되면 이 건물은 학교 법인사무소로 쓰일 예정이라고. 건물을 찾는 발길은 더욱 드물어질 듯 하다.




서북학회 회관,오성학교,한민당사,낙원동 교사…. 근대사의 숱한 장면들을 담은 이 건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6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건물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역사를 간직한 채 이 자리에 서있겠지만 그 쓰임새가 옹색해져가는 것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인 듯 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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