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CEO토크

동문 CEO - 영실업 한찬희 대표를 만나다 / 회계정보학과 93

태어난 지 몇 년 안된 꼬꼬마 시절 애지중지 가지고 놀며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때 그 시절 여자 아이들의 must have 장난감이었던 쥬쥬와 콩순이를 만든 회사가 바로 영실업이다. 1980년 창립한 후, 우리아이들의 손에 우리가 만든 장난감을 쥐어주겠다는 꿈을 가지고 주주와 콩순이, 또봇을 탄생시켰고, 전 세계에서 오직 서너 업체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자체 완구 캐릭터를 이용한 순수 국내산 TV 애니메이션을 제작 신화를 일궈내었다. 이 놀라운 발전이 현재 영실업의 대표인 한찬희 동문(경상대학 회계정보학과 93)의 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 완구 판매량 1위 또봇! 영실업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비결이 있나요?
또봇의 성공에는 기존과는 다른 형식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던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22편 26분이 방송을 위한 기본 포맷입니다. 26편이 한 시즌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 포맷을 그대로 따르면서 디즈니와 같은 하이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했다면 절대 감당해낼 수 없었겠죠. 또한, 캐릭터를 만들고, 제작하여 완구를 매대에 진열하기까지만 해도 몇 십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기업과 단체의 펀딩을 받아 제작을 하게 됩니다. 한 기업이 큰 금액을 투자하여 제작을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하는 투자자를 찾기는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선 여러 명의 투자자들이 비슷한 지분을 가지고 참여를 하여 비슷한 힘으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방향으로 제작이 되기 힘듭니다. 그렇게 제작된 완성품은 결국 유아 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이런 구조에서도 탈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회사 자체적 힘으로 낼 수 있는 펀드 구조와 규모를 정하고, 탑 다운 방식으로 제작의 규모와 양을 정하고, 애니메이션 퀼리티를 정하고, 만들 수 있는 캐릭터의 숫자를 정했습니다. 저희가 4분 16편인 비정형적인 애니메이션 포맷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생각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편의 영상 분량을 4분으로 정한 것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기기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Q. 확실한 주제 파악과 벤치마킹이 틈새 전략을 성공시킨 거군요?
틈새전략이라고 하면서 큰 플레이어들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 전략은 분명 실패를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틈새를 공략하겠다고 들어갔으면 그 위치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큰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캐릭터와 스토리 구조를 쓰고 배경을 적용하고, 제작 포맷에도 변화를 주구요. 파워레인저가 9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을 때, 저희가 남자 아이 시장에 들어가면서 파워레인저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9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파워레인저에 만족하지 못하는 틈새가 있을 것이고, 그 틈새에 들어가자는 것이 저희의 전략이었어요.

Q. 성공의 경험도 좋지만, 실패하셨던 경험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93학번인데, 아실지 모르지만, 굉장히 파란만장한 학번이었어요. IMF도 경험했고, 그 후에 굉장한 법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창업하면 다 성공한다는 인큐베이팅의 붐 시대도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우리 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다녔기 때문에 학생시절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할 수 있었어요. 창업 붐을 따라 저도 학교 다니면서 창업을 3번 정도 했습니다. 물론 다 망했고요.(웃음) 주식 투자를 해서 50만원으로 3억까지 벌어 보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전부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다 경험이자 공부였고 지금의 제가 되기 위한 자양분 이였다고 생각해요. IMF를 겪은 것도 정말 가슴 아픈 일이긴 합니다. 졸업 동기들이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발령이 안 나서 취소가 되기도 하고, 취업도 잘 안되고요. 그걸 불행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급변 기였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린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얻고 많이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Q. 실패(?)라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가장 큰 배움은 최대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발 사스로 인해 정말 연관 없을 것처럼 보이던 사업이 실패를 했어요. 그걸 나비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제가 모든 상황을 꼼꼼히 살피지 못해서 실패한 거죠. 학생 시절에는 친구랑 알바해서 모은 돈, 학교에서 논문 제출하고 지원을 받은 돈, 서울시와 같은 단체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실패를 쉽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실패를 하면 안 되는 위치에 있는 저에게 그때 그 실패 경험들은 굉장히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언가를 선택하기 전에 무조건 많이 고민합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CEO가 "이게 최선입니까?"라고 묻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가장 적절한 CEO의 답변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게 최선인줄 알지만 계속 재고를 요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결심을 하게 될 때 제 책임으로 하지만, 실패하지 않도록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배운 것이죠.

Q.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저는 창업 실패 경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창업을 하면서 "큰 돈 벌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100% 실패합니다. 내가 이건 실패를 해도 감당할 수 있다 싶은 정도로 시작해 야해요. 그 당시 실패한 벤처들을 보면 일단 사무실부터 잡고 시작하더라고요. 인테리어비용을 많이 들이면서 말이죠. 이 친구들은 펀딩을 받아서 큰돈을 벌고자 하는 거거든요. 그런 창업이 성공하는 건 정말 거의 없어요. 정말 몇 백만분의 일일 거예요. 창업을 하려면 일단은 내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로 일을 벌여요. 사무실은 우리 집 방한 칸, 지하 창고 이런 데에 차리고, 컴퓨터는 각자 들고 오는 식으로요. 그렇게 시작해서 일단 자잘한 경험들을 쌓아야합니다. 권투할 때 잽을 많이 날려서 거리를 재보고 상대의 스타일을 다 파악한 후 비축 해 두었던 힘으로 펀치를 제대로 날려야 승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해요. 또 보증서지 말고, 가족이나 지인 끌어들이지 말고 이런 건 말 안 해도 아시죠?(웃음)

Q. 영실업에서의 첫 시작은 어땠나요?
사실 영실업이 제 첫 직장은 아니었어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라는 국책연구원이 제 첫 직장 이었죠. 석사과정을 1년 만에 끝내고 바로 취업을 한 거였는데, 막상 연구원으로 들어가 보니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실업은 제가 조교로 근무를 할 때부터 영실업에 다니는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어서 관심 있게 지켜봤던 회사였습니다. 사실 영실업 다니는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참 공부 안하던 친구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영실업에 입사하고 근무하는 동안 회사의 분위기에 취하고 동기부여를 많이 받아서인지 만나도 일 얘기밖에 안하고 그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회사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일 년 반 만에 연구원을 그만두고 영실업에 오게 되었죠. 창업주이신 김상희 대표님께서 배려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이직 당시 연구원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6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라 당장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대표님이 6개월을 기다려 주셨어요. 그 6개월 동안 주말과 저녁시간에 회사에 나와 지금까지의 영실업의 계획을 같이 세웠습니다.

그 당시 영실업은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지금의 CJ와 같았던 계몽사도 한순간에 망할 정도 이었으니까요. 그 당시 재벌 계열사들이 서로 보증을 서주었는데, 한 회사가 망하면서 연쇄적으로 도산을 하게 되었고 결국 영실업만 살아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빛들을 많이 떠 앉아 재무구조가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어요. 제가 회사에 들어가 처음 한 일은 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컨설팅이었습니다. 재무구조 개선 플랜부터 시작하여 장기 플랜까지 지금은 고문으로 계신 김상희 대표님과 쭉 같이 계획하고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진행한 것이 12년 계획이에요. 운이 굉장히 잘 따라주어 그 계획들이 잘 들어맞아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향후 영실업은 어떤 기업이 되고 싶나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을 자기 아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거, 그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일본의 파워레인저가 그렇고, 미국의 디즈니가 그렇죠. 디즈니는 할머니와도 공유할 수 있겠네요(웃음). 그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문화적인 힘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또봇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가, 훗날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또봇을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완구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Q. 영실업이 원하는 인재상
인재상이요? 하하. 제가 아직 누군가를 평가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인 것 같아요. 60대가 지나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재상이라고 하긴 그렇고 저희 영실업에서 원하는 직원을 뽑을 땐, 직무에 충분히 적합한 분을 뽑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직무 정의를 정확히 하고, 그 직무를 할 수 있는 분. 딱 입사 스펙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직무에 최적화된 분을 뽑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문대학을 졸업했거나 지방대학을 나온 분들부터 서울대 나온 분들까지 인력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에요. 성실하기 정말 어렵거든요.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불편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변화를 해야 한다거나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안 해요. 하던 일을 바꾸면 불편해지니까요. 도전적인 목표 역시 쉽지 않아요. 작년과 같은 목표를 가지는 게 편하니까요. 때문에 불편함을 즐겁게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성실하더라고요.

Q. 영실업의 인재모집 전략이 있다면요?
예전에 배웠던 재무관리교과서의 첫 장에 '재무관리의 목적은 주주부의 극대화에 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하지만 이해관계자를 주주에 한정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인 것 같아요. 주주도 당연히 돈을 벌어야하지만, 종사하는 직원들도 회사와 같이 성장해야하죠. 고객들의 가치도 당연히 높아 져야 하구요. 그래야 지속가능한 회사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천오백억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기업 중 탑 25%안에 드는 정도의 연봉을 보장하고, 기타 육아비나 병원비 같은 복지혜택도 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회사 내에 휴게실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동호회 지원을 하는 등 특별하진 않지만, 활기를 유지시키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Q.추억의 93학번, 그때 그 시절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있었어요. 가족들의 반대로 영화를 전공하진 못했지만,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빨리 다녀왔어요. 그리고 1년간은 영화판을 많이 쫓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1년을 해본 결과, 이 판이 배고프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영화를 하기에는 내가 그리 창의적이거나 자유롭지는 않구나, 나도 굉장히 전형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계 공부를 해봤더니 또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전공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계학과 친구들처럼 CPA공부를 하진 않았어요. 물론 전공공부를 안한 건 절대 아니였고요 다만 자격증 취득 대신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고, 눌러도 다니고요. CPA 자격증 취득을 포기했기 때문에, 저는 대학생활 후회 없이 하고 싶은 일들 다 해볼 수 있었어요.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학시절, 나를 이끌어주신 교수님
서정우 교수님. 지금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신 분이세요. 대학시절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많이 닮아가고 싶은 분이고요. 굉장히 즐겁게 사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선의로 대하시죠. 그러면서도 자기 개인적인 꿈은 놓치지 않으세요. 논문 지도교수님이셨는데,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가르치실 때 "너 이게 아니야! 너 틀렸어! 이게 답이야!"이런 식으로 알려주시는 게 아닌, "이거 아닐까? 이건 어떨까?"라고 물어보시는 식으로 가르쳐주셔서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셨어요. 젊을 땐 교수님도 모르시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웃음) 나이가 들어보니 저런 교수법이 정말 힘든 거였구나. 정말 제대로 가르쳐 주신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이 '나의 꿈은 세계평화 인류복지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시곤 했는데, 그래서 저희 학과 건배구호도 세계평화 인류복지 이었어요. 그땐 저도 그냥 웃으며 들었었는데, 지금 저는 그걸 진짜 꿈꾸고 있어요. 제가 완구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기본적으로 착한 사업이기 때문이거든요. 적어도 인류복지 중 아동복지에는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Q. 국민대학교 후배들을 위한 조언
저는 대학시절에 못 해본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그때 하고 싶은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CPA 자격증 취득에 대한 목표를 내려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CPA공부를 했다면, 좀 더 빨리 안정적인 직업을 잡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안했기 때문에 저에게 도움이 되는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좀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대학생들이 너무 안정적인 직장, 스펙 쌓기 같은데 올인 하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일들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만일 공무원을 정말 하고 싶어서 준비하신다면 꼭 되세요. 되도록 하세요. 그거 준비한다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술로 풀거나 게임하거나 하는 분들, 불안감을 그렇게 해소할 것 같으면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 준비하는 모든 것들이 즐거워야 해요. 그거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건 내일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전공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취업준비를 하고, 시험을 위한 공부는 늘 하면서 정작 전공 공부는 잘 안하더라고요. 만일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20대 때 한 공부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경험하게 될 겁니다. 제대로 안하면 정말로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예요.

 

인터뷰를 위해 찾은 영실업 사무실은 생각보다 더 자유롭고,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완구 회사답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회사 휴게실에는 한쪽 벽면에는 만화책이 꼽힌 책장이, 한쪽 벽면에는 주방과 긴 탁자, 그리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경영, 주주와 직원, 소비자들의 가치를 높이는 경영을 하고 싶다는 한찬희 동문의 이야기가 진심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더 나아가 인류복지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가진 대표가 국민대학교의 선배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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