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동아광장/김병준]국회의 기능과 권한을 줄이자 / 김병준(정책학전공) 교수 | |||||||
---|---|---|---|---|---|---|---|
대의기구 역할 한계 보인 국회, 더 이상은 희망 안보여
국회의 기능과 권한을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국회가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입법권을 위아래로, 또 옆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아침 신문을 읽다 홧김에 불쑥 나온 말이 아니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면면이 싫어서, 또 그들이 벌이는 치졸하고도 비생산적인 정치가 싫어서만도 아니다. 어찌 보면 그들 역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의 피해자다. 이유는 보다 본질적인 데 있다. 간단히 말해 오늘과 같이 변화가 심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세상에서 국회 같은 대의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미래학자 나이스비츠가 말한 것처럼 의회제도 자체가 이제 박물관으로 갈 때가 되지 않았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당장에 국회가 다루는 정책만 해도 그렇다. 세상이 변하면서 그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 국회도 초기에는 많아야 한 해 수백 건 정도의 법률안이 제안됐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수천 건이 된다. 이 많은 문제들을 국회가 제때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 있는 조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장인 국회가 말이다.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구조도 복잡해졌다. 신념과 이해관계가 얽혀 이것을 풀면 저것이 맺히고, 저쪽을 고려하면 이쪽이 달려든다. 대립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차’ 하는 순간, 세월호법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하나다. 그 한계가 분명한 국회의 기능과 권한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대의민주정치의 대안인 직접민주정치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다. 분산은 종적 분산과 횡적 분산을 모두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종적 분산으로는 국민투표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전자원탁회의 등 숙의(熟議)민주주의 기법도 좋은 대안이 된다. 모두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일이자 입법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지방분권을 통해서 입법권을 지방의회와 지역시민사회로 내려 보내는 것도 중요한 대안이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의회가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상당한 수준의 지방분권과 이를 통한 의회의 입법 부담 완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저 모양의 지방의회에? 정신이 나갔느냐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의회 또한 국회의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의 산물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적지 않은 지방정부들이 전자원탁회의 등을 통해 지역시민사회가 직접 결정을 하게 하는 실험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시도들이다. 횡적 분산으로는 유럽과 같이 조합주의적인 기구들을 만들어 입법권과 준입법권을 부여하는 방식과 미국처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규제위원회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역시 이들 국가의 의회가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당장에 정치 관련 입법을 국회와 떨어진 기구를 만들어 설계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사실 우리는 늘 속고 산다. 이 판이 지나가면 뭔가 나아지겠지, 저 당이 이기면 좀 좋아지겠지 한다. 그러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답이라 생각해 왔다. 그리고 또 그런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고개를 넘고 넘어도 또 고개다. 국정원 선거 개입 어쩌고 하는 판을 넘으면 세월호법 판이 벌어지고, 이걸 넘으면 또 다른 무엇이 있다. 누가 이기건, 누가 지도자가 되건 지금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한 국회는 언제나 저 모양일 것이다. 이제 제대로 물을 때가 됐다. 대의민주주의와 국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차라리 희망을 조금씩 내려놓고 대안을 찾는 편이 옳다. 그 편이 오히려 우리 정치와 국회를 바로잡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 |
이전글 | [머니투데이]국민대-보쉬, 산학연계 교육과정 개설 |
---|---|
다음글 | [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5·24조치 해제가 北의 변화를 촉진한다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