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홍성걸 칼럼] 누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죽이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을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8월 19일, 야당과 언론계, 학계 등 거의 모든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171석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범여권인 열린민주당과 이런저런 이유로 무소속이 된 민주당계 의원들을 이용해 무책임한 언론의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언론 개혁이라며 이 법의 개정을 밀어붙였다.

 

정당의 이름에 '민주'라는 이름을 넣고 입만 열면 김대중, 노무현을 이어 가는 민주 세력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도 강력히 반대한 이 개정안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것이 만행인 이유는 실체적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모두 위반했음은 물론, 향후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고 사실상 독재로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의 명분은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보도, 즉 가짜 뉴스에 대해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여 소비자의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무엇인지 기준이 모호하여 권력자에 의한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 가짜 뉴스를 주로 생산하고 퍼 나르는 것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대부분인데, 이는 제외하고 오히려 언론사나 포털들만 대상에 포함시켰다. 논란의 중심인 '열람 차단 청구권'은 언론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계속 침해하는 경우 언론과 포털 등에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조국 사태의 재발을 막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것은 보도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동안 오히려 전략적 봉쇄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죄로 형사적 처벌이 가능하고 언론중재위나 재판을 통해 민사적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는데,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인정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2중 처벌이나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절차적 측면에서 이 개정안은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국회법은 상임위에서 찬반 대립 시 여야 각 3명씩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 최장 90일간 논의하여 4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당은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배정해 사실상 처음부터 안건조정위의 숫자를 4대 2로 만드는 꼼수를 부렸다. 하긴 이런 탈법이 처음은 아니다. 공수처법 통과 시엔 열린우리당 최강욱 의원을 야당 몫으로 배정했고, 탄소중립기본법 처리를 위해서는 윤미향 의원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법 제정 시에는 이상직 의원을 야당 몫으로 배정했다. 김의겸, 최강욱, 윤미향, 이상직 의원이 야당 측 의원이라니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일 아닌가.

 

언론이 부정확한 보도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을 줄이자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공동체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나아가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이번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더불어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조국 등 친정부 인사들뿐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죽하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까지 독재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나섰겠는가.

 

청와대와 여당은 소위 검찰 개혁이란 미명하에 권력기관들을 장악했고, 인사권을 악용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우리 사회의 심판 기능도 모두 장악했다.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 지방 권력 등 대한민국의 3대 권력을 모두 지배한 여당이 이제 제4의 권력이라는 언론까지 입에 재갈을 물려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면 정치의 운동장은 완전히 기울어져 회복할 수 없는 불균형이 완성되고 이 땅의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다. 더욱 기막힌 일은 이를 막아야 할 야당이 내부 분열로 민주주의의 종언을 막을 힘도, 용기도, 그리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사이비 민주화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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