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시비비] 토건족의 비애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대장동 사건이 불거지면서 토건족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오르내린다. ‘토건’은 토목과 건축을 모아 일컫는 말이고 ‘족’은 경멸적으로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니 건축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처지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제까지 드러난 비리 혐의는 토건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변호사나 회계사, 기껏해야 공기업 임원이 전부다. 부동산 개발로 불로소득에 가까운 엄청난 수익을 얻으려는 세력을 가리키는 말이니 토건비리족 또는 토건투기족이 맞는 표현이겠다.


토건족을 가르치고 주로 토건족과 교류하지만 토건투기족을 만나본 적도 많다. 예전에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때 수많은 부동산 시행사를 만나보았다. 고도의 전문 분야지만 의외로 지식이 없거나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놀란 적이 많다.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다. 땅값은 고사하고 초기 건축설계비를 치를 여유도 없지만, 천문학적 숫자로 큰소리를 치며 찾아온다. 잠재적 건축주이다 보니 사업 구상을 들어주는 일이 주요 일과이기도 했다. 여러 유형을 겪다 보니 사업의 성패를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우선 건축이나 토목 또는 도시를 전공하고 출발한 시행사의 경우에는 성공 확률이 낮았다. 성공하더라도 큰돈은 벌지 못했다. 이과생답게 고지식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배우고 수련 과정을 거쳐 면허를 취득한 사람들이어서 지식뿐 아니라 전문가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서도 학습이 돼 있다. 하지만 금융에 대한 이해나 인맥은 많이 떨어졌다. 기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생각, 공익에 대한 전문가적 양심 같은 것들이 그들의 성공을 가로막았다.


반면 성공한 시행사들은 전문지식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 상상력이라는 것은 부동산 관련 법규에 대한 무지나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 식의 신념으로 밀어붙이고 신기하게도 그들이 꿈꾼 대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수완좋게 투자금을 끌어대고 규정을 바꿔 사업을 성공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상상력의 대가는 엄청났지만 토건 전문가들에게는 박하게 사례하고 큰돈을 모았다는 소문을 나중에야 듣고는 했다. 이들이 토건투기 세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부동산은 적어도 50년은 지속할 주거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더구나 대장동처럼 어렵게 보존해오던 자연녹지를 해제해서 택지로 만들고 아파트를 짓는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고 추진하는 전문가들보다 투기세력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과 성공 확률을 갖는 것은 시대의 모순이다.


마침, 지난달 21일 서울시는 2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와 용적률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업 및 준주거지역에서 주거 비율 제한 규정도 완화하겠다고 한다. 대선 주자들은 이제까지 도시관리를 위해 어렵게 지켜온 원칙들을 풀어주거나 해제하겠다고 다투어 공약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켜온 원칙을 버리고 투기 세력들이 상상력을 실현하는 모양새이다. 그들의 탐욕을 공인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적은 보수에도 전문가의 자부심을 품고 묵묵히 일하며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공공선을 지키겠다며 의견을 내지만 묵살당하는 토건전공자의 패배는 아닌지 걱정된다. 부동산을 머니게임으로 치부하는 투기세력들에게 삶의 환경을 맡긴다면 우리 도시의 미래는 암울하다. 진짜 토건족에 무겁게 귀를 기울이시라.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의 말을 듣는 것처럼.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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