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자동차와 비장소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2004년 영화 ‘터미널’은 홀로 된 난민이 주인공이다. 미국 뉴욕을 방문하던 중 모국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여권은 무효가 되고 항공권은 압수된다. 승진을 앞둔 공항 책임자는 처리가 곤란한 주인공 빅터를 공항 환승 구역 안에 마냥 머물게 한다. 빅터는 용케 살아남고 공항 근무자들과 교류하며 미모의 승무원과 사랑마저 나누게 된다.

 

올 때마다 공항에서 마주치는 여주인공 승무원이 귀국길인지 묻는다. “아주 오랜 시간 지연되고 있어요.” 대답을 얼버무린 그는 실제로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었다. 빅터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순환공간이자 거대한 쇼핑센터에서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푸근한 결말을 위한 설정으로 빅터는 영어는 서툴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재주도 많다. 공사 현장의 목수로 일자리를 얻고 공항 직원들을 이웃으로 만들고 폐쇄된 구역에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가며 살아남는다. 실제로 1998년부터 무려 18년간 프랑스 파리 드골 공항에서 숙식한 사람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는 난민 문제보다는 ‘장소’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현대인의 생활이 빅터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공항, 기차역, 대형마트,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형 주거단지 등의 장소가 인간적인 장소가 될 수 없으며 이를 ‘비장소’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비장소는 말 그대로 장소 아닌 장소이다. 여기에서 장소는 ‘인류학적 장소’이다. 즉,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집이나 학교, 거리, 광장, 상점 등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접해온 공간이다. 여기엔 역사가 깃들어 있고 이웃이 있다.

 

이에 반해 비장소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이며 순간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유대 관계가 형성될 여지가 없다. 또한 비장소는 ‘타자의 공간’이자 ‘스펙터클로 구성된 공간’으로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은 역할이 없어진다. 오제는 비장소의 특성을 셋으로 정리한다. 우선 일상적인 방식의 소통이 사라지고 표지판이나 기호가 대신한다. 둘째, 개인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고 ‘승객’이나 ‘고객’으로 불린다. 셋째, 어떤 역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순간 즉 현재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빅터가 필사적으로 장소를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공항 표류기’였던 영화를 떠올린 것은 두 가지 뉴스 때문이었다. 서울 여의도와 경기도 동탄에 두 개의 초대형 백화점이 개장했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함을 찬양하는 뉴스 기사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는 사연이다. 2000대가 넘는 주차 규모이니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다. 걷기보다 자동차 중심으로 변해가는 뉴스는 더 있다. 얼마 전에 개장한 서울 강남의 한 호텔은 거리에서 호텔로 걸어서 들어가는 방법이 없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거기에 마련된 화려한 입구를 통해야만 호텔 로비를 찾을 수 있는 기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두 사례는 우리 도심마저 자동차 중심 공간으로 이행하며 오제가 말하는 비장소의 특성이 뚜렷해지는 징후로 보여 씁쓸하다.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이자 개인 공간에 들어앉아 이웃과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창밖으로 서로 비껴가기가 일상화됐다. 각자의 이름 대신 기껏해야 차량번호로 불린다.

 

오제는 장소와 비장소를 선악이나 우열 관계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를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장소를 최소로 하고 인간적 장소를 더 만들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도시계획과 관리의 제일 지침이 돼야 한다.

 

팬데믹이 길어지며 원격수업, 화상회의 등 가상세계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현실 세상에서는 자동차로 집과 직장의 주차장을 오가니 이웃을 만날 일은 없다. 동네 풍경은 온통 같은 프랜차이즈 간판이어서 어디나 비슷한 분위기이니 특별한 소속감도 애착도 없다. 빅터 같은 난민 신세도 아닌데 말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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