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싸구려 뷔페같았던 대선 정치 토론회 / 장승진(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정치분야 방송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윤석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토론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대선 후보 2차 토론회는 정치 개혁과 관련한 의제를 다루었다. 솔직히 유권자 대부분에게 피부로 와닿는 이슈는 아니었겠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필자는 다른 어떤 토론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보고 난 감상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차린 것은 많지만 정작 맛은 별로인 싸구려 뷔페식당에 다녀온 느낌이다.

 

첫 번째로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를 언급했는데, 정작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에서 이야기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은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총리제가 되었든 청와대 기능 축소가 되었든,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의 방안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은 듣기에는 그럴듯해도 대부분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입법, 혹은 궁극적으로 개헌을 통해 제도화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권한 분산은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후보가 이야기하는 대통령 권한 분산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일 뿐이다.
 

두 번째로 진영을 넘어선 통합내각 구성이 듣기에는 좋아도 과연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지 의문이다. 청와대의 정치 개입을 축소하고 행정부의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를 책임지는 장관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과 자율성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가치에 대한 동의와 공감에 기반한 정치적 신뢰를 요구한다. 권한과 자율성을 행사하지 못하는 장관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장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부처의 운영에 사사건건 개입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통합내각은 현실성은 둘째치고라도 작은 청와대라는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 번째 지점은 다당제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다. 필자 역시 양당제의 폐해와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다당제 구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보다 비례적인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완전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비례적인 선거제도의 전제조건은 현재 전체 의석의 15% 남짓에 그치는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구 축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가능한 대안은 국회의원 정수 확대뿐이다. 과연 주요 정당과 후보는 국민들 앞에서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할 용기와 이를 관철할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서 진행되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공허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역설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위한 정치 개혁을 결국은 대통령(후보)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해 제안된 개혁안은 이미 차고도 넘치며, 이들 중 상당수는 주요 정당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다면 국회 차원의 입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여태껏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다가 대통령에게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아달라고 요청하는, 혹은 대통령에게 의원들을 움직여달라고 요청하는 한국 정당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쩌면 한국 대통령은 제왕으로 추대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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