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첫 민주정부는 DJ 정부’는 분열 선동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103주년 3·1절 기념사가 또다시 분란을 일으켰다. 문화예술 발전의 힘이 민주주의에 있다면서 “첫 민주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라고 발언한 것이다. 뒤집어 보면 6월항쟁 이후 민주화를 이루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기틀을 마련한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함으로써 보수·진보 간 첨예한 건국 시기 논쟁을 또 건드렸다. 대선을 불과 여드레 앞두고 이처럼 이념적 편 가르기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대통령을 어떻게 봐야 하나. 그래서 ‘참 나쁜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도 너무 순화된 표현 같다.

 

기념사 내용이 문제가 되자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한 라디오 방송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 이전의 정부는 ‘형식적’ 민주주의이고 김대중 정부가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야단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참으로 가당찮은 변명이다. 왜 문 대통령과 박 수석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건국절 논란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지에 대한 국제법적 논의에는 이견이 없다. 즉, 민주적 선거를 통해 유한한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조세권이나 경찰권 등 배타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정부를 구성한 때를 건국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우리의 제헌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어받는다는 표현과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뿌리로서 임시정부 언급은 상징적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상징적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상해 임시정부로 볼 수는 있지만, 실정법 체계나 학술적 의미에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청와대는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정부로 거론한 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김영삼 정부는 3당 합당을 통해 태어났으므로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김대중 정부는 5·16군사쿠데타를 주도한 김종필의 자민련과 공동 정부로 탄생한 태생적 한계가 있다. 3당 합당은 야합이고 DJP 연합은 정당한 결합이라는 건 궤변 아닌가. 형식적·실질적 민주정부라는 변명도 그렇다. 형식과 실질을 구분하는 기준이 뭔가.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이 특히 대일 문화 개방을 언급하며 나왔다는 데 더욱 경악한다. 당시 문화개방 정책에 문화예술인 대다수가 반대했고,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도 반대하지 않았던가. 문화개방을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했던 건 사실이다. 미국이 한·미 FTA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스크린쿼터 축소에 수많은 영화예술인이 삭발까지 하면서 반대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이를 무릅쓰고 FTA를 실현했기에 오늘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영화산업을 갖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게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으로 내몰린 문화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이지, 민주주의와 무슨 큰 상관이 있단 말인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경고한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더는 국민을 이념적으로 갈라치기 하지 말라. 민주화 이후 국민이 직접투표를 통해 선택한 정부마저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을 국민은 더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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