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세계와우리] 모스크바 테러, 푸틴에 양날의 칼인가 / 장덕준(유라시아학과) 교수

5선 푸틴 ‘현대판 차르’ 등극
참사에 유능함 이미지 흠집
되레 권력 강화 기회 될 수도
향후 어떤 행보 취할지 촉각


블라디미르 푸틴이 압도적 지지로 5선에 성공했다. 이번 승리는 가히 ‘현대판 차르’의 등극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그러나 ‘대관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형 참사가 터졌다. 지난 3월 22일 저녁 모스크바 북서쪽에 위치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네 명의 테러범이 들이닥쳐 관람석에 총기를 난사하고 방화 테러를 가해 144명이 숨지고 5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테러 공격은 2004년 9월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 이래 러시아가 겪은 최악의 테러 사건이다.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은 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IS-K가 모스크바 시민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들과 종교·종파·사상이 다른 세력들에 대해 ‘지하드(성전)’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IS-K는 기독교 세력뿐만 아니라 시아파 이슬람 세력까지 적대시해 왔다. 그렇다면 왜 하필 러시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을까. 우선 두 차례의 체첸 전쟁을 들 수 있다. 1994년과 1999년에 러시아는 분리·독립을 외치던 체첸 무슬림 무장세력의 근거지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펼쳐 이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이러한 러시아의 강경정책은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원한을 사기에 충분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2015년 이후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시아파이자 친러 성향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벌인 것도 수니파인 IS-K의 원한을 샀다. 그리고 테러범들의 출신지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정책과 처우에 대한 불만도 이번 테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끔찍한 폭력을 매개로 하는 정치행위인 테러는 상당한 정치적 파급력을 갖는다. 그러면 이번 모스크바 테러 사건은 5기 출범을 눈앞에 둔 푸틴 정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우선 이 사건은 푸틴에게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테러 사건이 터지자 푸틴은 이 사건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사건 직후 IS-K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개입설은 설득력이 약해졌지만 푸틴은 이 사건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 강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이번 테러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더 공고히 하려고 할 것이다. 이미 푸틴은 대규모의 테러 비극을 자신의 통치력 강화 계기로 활용한 전력이 있다. 2004년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 이후 푸틴 정부는 테러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명분으로 주지사의 주민 직선제를 대통령 임명제로 바꾸고 국가두마(하원) 의원 전체를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도록 하는 등의 정치개혁을 추진해 정치적 장악력을 강화한 바 있다.


한편 이번 테러 사건은 푸틴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번 테러 사건이 5기 취임을 앞둔 ‘유능한 지도자’ 푸틴의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는 것이다. 서방의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가 결국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벌어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크렘린이 전쟁 수행에 국정의 최우선권을 두고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국제테러에 대한 대비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수주 전에 미국 정보당국자들은 이슬람국가 세력에 의한 테러 징후를 크렘린 측에 경고했음에도 러시아 당국은 이를 묵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깊어진 상호 불신의 결과다.


테러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인될 수 없다. 또한 테러 집단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타협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과 재발 방지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인권 유린 등 보편적 가치를 희생시키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번 모스크바 테러 이후 푸틴 정부가 어떠한 행보를 취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이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이전글 환자 볼모로 한 의료 거부 책임 물을 때[포럼]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다음글 작년 PGA투어 챔피언 42명… 평균 31세·美 선수 21명 ‘최다’[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