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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 ‘열정과 재능’… 부모의 사랑과 격려로 더 꽃피웠다[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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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골프 전설’ 반열 오른 뒷이야기 네 살 무렵 골프에 관심 갖자 레슨비·비싼 장비 구입하려 아들 플레이에 간섭 않으려
매킬로이가 골프 선수로 성공하는 데 가장 큰 공로자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그의 부모님이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외곽의 인구가 고작 1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동네인 홀리우드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였던 그의 부모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프로 데뷔 전까지 오랜 시간 초인적인 헌신을 했다.
아버지 게리는 아들의 비싼 골프 레슨비나 장비 구입비, 투어 참가비 등을 대기 위해 한 가지로는 부족해 무려 세 가지 직업을 갖고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했다.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동네 스포츠클럽에서 화장실과 욕실 바닥을 닦으며 청소 일을 했고 이후 저녁 6시까지는 골프장 내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7시부터 자정까지 다시 스포츠클럽 술집에서 일했다.
어머니 로지도 공장 노동자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 주로 야간근무를 자원해 밤새워 일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평소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볼 시간조차 없었지만 어쩌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그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매킬로이의 부모는 지치거나 힘들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골프에 재능이 있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부모의 모습은 발레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부정을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회원제 골프장이긴 했지만 연간 회원권 가격이 한국 돈으로 130여만 원에 불과해 노동자였던 매킬로이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골프 클럽의 회원이었다.
비회원 그린피도 주말에 5만 원 정도면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했다.
이처럼 골프를 좋아하던 아버지 덕에 골프장을 함께 따라다녔던 어린 매킬로이는 생후 만 18개월 무렵부터 선물로 받은 플라스틱 골프채를 가지고 놀았다. 네 살 무렵 아들이 골프에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는 마이클 배넌 코치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우게 했다. 다행히 아들은 골프에 열정과 재능이 있었다.
4살 때 이미 완벽한 스윙을 구사했던 매킬로이는 9살 때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 10살 이하 어린이골프대회에서 우승하고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탁기 속에 골프공을 클럽으로 쳐서 집어넣는 묘기를 보여줄 만큼 이미 유명 인사였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프로 골프 선수로 정한 매킬로이는 17살 때인 2007년 프로로 데뷔했다.
보통 매킬로이처럼 자녀가 어릴 때 부모가 주도해 선수로 키우는 경우, 자녀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심한 갈등을 빚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매킬로이의 아버지도 아들이 17살이 되기 전까지 캐디로 함께 영국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종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이면 아들의 플레이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곧장 전문 캐디를 구했다.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에서 아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주변에서 프로 골퍼로 키우려는 욕심에 자식을 망치는 부모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매킬로이의 부모는 아들에게 한 번도 골프를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항상 골프를 진심으로 즐기고 골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이처럼 성적이나 연습을 닦달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를 보며 매킬로이는 연습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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