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린의 종착역, 그린디자인 2003-2012

최근 환경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커지고, 단어들 앞에 ‘그린’ 혹은 ‘녹색’ 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이 유행처럼 도졌다. 녹색장터, 녹색도시, 녹색경제, 녹색성장, 녹색에너지까지.

‘디자인’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우리가 평소에 디자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란 ‘물건을 편리하게 쓰기 위해 필요한 것’ 혹은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물건을 예쁘고 눈에 띄게 만드는 요소’ 정도로 축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 앞에 '그린‘이 붙으면 어떤 의미가 될까. 이 전시회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그린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뜻 깊은 전시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1층 조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외부에선 몇 차례 열린바 있지만 교내에서 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그린디자인의 10년간의 산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말하자면 10주년 기념전인 것이다. 그린디자인대학원에 대해 잘 몰랐던 학우들에게 전공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알리기 위함도 전시의 목표 중 하나다.


전시회는 포스터부터 달랐다. 한 번 쓰고 버려질 종이가 아닌 포스터로 쓰이고 나서 다시 입을 수 있는 티셔츠에 전시 포스터를 만들고, 이를 학교 정문에서부터 전시장까지 붙이는 퍼포먼스로 시작을 알렸다. 이번 전시에선 작품 전시뿐 아니라 물 드로잉 퍼포먼스, 갤러리 토크, 전공생 토크쇼 등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했다.

 

전시회는 ‘수업’과도 같았다. 환경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겐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린디자인대학원을 창설하고 이번 전시 총괄을 맡은 윤호섭 교수는 “그린디자인은 환경재앙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인 지금, 디자인의 역할과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며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들에게는 물려줘야 한다. 그린디자인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시작과 실천”이라고 그린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나는 디자인을 통해 손에 잡히는 것을 만들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들을 전하고 싶었다. 또, 인간의 실수는 막을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린디자인을 하게 된 이유”라 덧붙였다.


자원이 고갈되고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까지 쉽게 이어지진 않는다. 어쩌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론 뜨겁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을 위한 따스한 마음과 생각을 실천하는 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번 전시가 그 모습 중 하나다. 그래서 그린디자인대학원의 존재가 또 이번 전시회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린디자인이라는 여느 전시회와는 다른 이름이 붙은 만큼, 전시품들도 개성이 강했다.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들에게선 우리가 쓰는 것 그 무엇이든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핵에너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엿보였다.


포장지에 쓰이는 테이프들을 모으고, 접고, 붙여서 만든 ‘테이프 볼링 공’, 조카가 자라며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서 버려져야할 신발에 꽃을 심어 새 생명을 부여해준 ‘아기 신발 화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종이컵으로 인해 위태로워져 가는 동물들을 보여준 ‘쌓여진 종이컵 위의 북극곰과 펭귄’, 누군가는 버린 폐지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폐지, 그것을 줍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그려진 ‘이삭 줍는 사람들’, 모니터 속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가 늘어만 가는 핵에너지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종소리처럼 들렸던 ‘No more Nuclear power plants’ 등.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린디자인대학원 졸업생이자 한 전자회사 제품포장 디자이너였던 정다운 씨는 “디자이너의 역량으로 절약이 가능한 것들이 많다고 느꼈다”며 “우리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에 대해 함께 불편한 마음을 갖자는 게 내가 그린디자인을 추구하며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이다”라며 전시회에 참가한 의의를 전달했다.

최근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인 펭귄들이 서로 기대어 위태롭게 서있는 작품 ‘펭귄타워’, 우리의 자동차가, 우리의 헤어드라이기, 우리의 샴푸가 그들의 보금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 '펭귄탑쌓기'. 펭귄조각들로 탑을 쌓고, 마지막으로 그 펭귄들 위에 아슬아슬하게 알을 올려놓아야 한다. 이 행사에 참여한 대학원생 박선희 씨는 “펭귄들을 쌓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면서도, 마지막에 알을 올려야 할 때 ‘아 이거 구나’ 싶었다. 우리로 인해 펭귄의 다음 세대도 위협을 받고 있단 걸 깨달았다. 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 깊은 경험”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외에도 환경에 관한 시를 읊으며 우리가 얼마나 환경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지를 깨닫게 해준 ‘윤재림 교수 생태시 갤러리 토크’, 녹는 빙하로 불투명한 미래를 살아가는 북극곰과 펭귄에게 튜브를 던지는 퍼포먼스 등 과연 그린디자인 전시회다운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졌다.

이 전시회는 우리 삶에 ‘그린’의 영역이 얼마나 넓고 깊게 흡수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오면 우리가 쓰는 모든 것들은 버릴 게 없다. 결국엔 무언가로 쓰일 수 있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란 걸 느낄 수 있다.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인식을 전환하고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결국 그린디자인 전시회라는 수업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다.

버려진 천들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로 만든 한 작품의 이름처럼 모든 것은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하늘, 우리가 마시고 있는 공기와 물 결국은 하나다. 우리가 쓰고,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왼손에 잡고 있는 그 종이컵, 그걸 내려놓아 보자. 그것이 시작이다. 봄볕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봄날, 녹음이 더욱 짙어질 수 있는 그 시작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작을 그린 디자인 전시회와 함께 하면 더욱 좋으리라.

전시는 국민대 조형관 1층에서 4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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