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인 땅에서 교훈을 캐다 - 농촌봉사활동


 

요즘 농촌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104년 만에 찾아 왔다는 전국적인 가뭄은 농촌어르신들의 입술까지 바싹 말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하루 종일 버스라곤 5대 밖에 닿지 않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선고 2리 작은 마을에 국민*인들이 찾아갔다. 서울 도심의 화려하고 예쁜 옷들을 벗고, 스스로 몸빼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기를 자처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너흰 여행가니? 난 농활 간다!

2012년 6월 25일 10:00am 방학을 맞이한 학교가 오랜만에 활기차게 움직인다. 오늘은 드디어 농활을 위해 떠나는 날,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묘한 표정의 국민*인들이 하나 둘씩 체육관에 나타났다. 오늘을 시작으로 9박10일 동안, 국민*인들은 충북 제천 덕산면 선고 2리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꾼으로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날은 학교만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게 아니다. 큰소리 날 일 없는 선고 2리 에서도 아침 댓바람부터 서울 손님맞이 준비로 바쁘다. 마을회관 정리부터, 이불빨래, 식사준비까지 하나하나 손을 대지 않을 것이 없었다. 이런 어르신들의 노고 덕분에, 이른 저녁 선고 2리에 도착한 국민*인들은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농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박정훈 (회화전공 07) - 사실 다들 농촌하면, 뭔가 도시보다는 덜 깨끗할 것이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근데, 오늘 우리가 지내게 될 마을회관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불도 깨끗하고, 부엌도 깔끔하고! 오히려 저희 집보다 더 깨끗한 것 같아요(웃음)

 

★ 땅에서 교훈을 캐다 - 국민*인 이야기

농활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활의 진정한 의미는 농촌연대활동, 즉 농촌에 내려가 함께 일하고, 농촌의 현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활동이다. 실제로 농촌과 도시는 긴밀히 연결되어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농촌과 도시를 별개로 나누어 생각한다. 지난 25일 농활을 떠난 국민*인들 역시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농촌에서 직접 생활하며 농촌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도시와의 연관성을 깨닫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상적으로 생각 했던 반찬의 소중함을 되돌아 보는 것, 도시에서 누려온 편리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농촌의 어려움이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라는걸 깨닫는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농활이 아닐까.

 
 

뉴스에서 104년 만의 가뭄이라며 농촌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를 많이 보긴 했지만, 정말 이 정도 인줄은 몰랐어요. 첫날 처음 농사일을 하러 나와서, 브로콜리 잎들이 손을 대자마자 바삭하고 부서지는 걸 보고 그제 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마을회관 앞의 개울도 원래는 물이 맑고 양도 많아, 물고기들도 많이 살았다 던데, 지금은 그저 물줄기만 남아있는 정도 에요. 이렇게 직접 와서 보고 어르신들의 고통을 느끼고 나니, 정말 생각 없이 먹곤 했던 음식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됐어요. 브로콜리 하나를 재배해도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만큼 많은 손들을 거쳐야 한다 는걸 알고 나니, 반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사실 별 생각 없이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여기 내려와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어르신들과, 그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다 보니, 그 어르신들이 지금 겪고 있는 농촌의 어려움이 남의 일이 아닌 제 일로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농촌이 무너지면, 도시 또한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동안 너무 농촌의 현실을 나 몰라라 해왔던게 아닌가 싶어요. 다른 국민*인들도 더 이상 농촌의 어려움을 그저 뉴스에서 다루는 일상적인 내용의 하나라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정말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한 번도 도시를 벗어나서 생활해 본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제공되는 편의 시설들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었죠. 예를 들면, 엘레베이터나 택시, 믹서기 같은 소소한 것들이요. 근데 농촌에 내려와서 부족한 것들을 하나하나 다른 방법들로 매꿔가다 보니, 좀 돌아가긴 하지만 안되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제야 내가 너무 도시의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도구 없이 혼자서 해내는 법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하나하나 제 손으로 일구고, 부족함을 채워가는 법을 생각해 내야 했던 농활에서의 경험은 제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국민*인의 농촌생활 24시

 

1. 하루의 시작이자 마무리인 농사

농촌에서의 아침은 도시에서보다 빨리 시작된다. 도시에서라면, 한밤중일 새벽7시면, 국민*인들은 일하러갈 채비를 마치고 트럭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농촌에서의 하루가 시작되면, 국민*인들은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농사일에 투입된다. 선고 2리에서 국민*인들이 맡게 된 농사일은 주로, 브로콜리 밭의 잡초제거, 수수모종심기, 적채수확, 감자수확이었다. 대부분의 농사일이 그렇듯, 하루 종일 어리를 숙이고 일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무릎이고 허리고 남아나질 못했다. 이 고되고 많은 일들을 어르신들께서 홀로 감당해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특히 선고 2리와 같은 작고 깊숙이 있는 시골마을의 경우, 돈 주고 일하는 사람을 구하려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어르신들이 직접 해야만 했다고 한다. 

탁영지 (입체미술전공 12) - 실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농사를 지으세요. 덕분에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많이 보고 자랐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 어르신들께서 농사일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 보고 그러면 더 많이 도와드리고 싶고 그렇죠. 일도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어르신들께서 두 번 일하시게 되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정덕 (전자공학전공 07) - 아무래도 계속 풀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계속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해요. 그러다보니 허리랑 무릎이 많이 아프네요. 이런 일을 어르신들께서 다 맡아서 해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저희가 해도 이렇게나 힘든데…….

김형준 (전자공학전공 09) - 그 동안,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농촌 어르신들의 어려움에 대해 많이 듣고 보긴 했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농촌에 직접 와서 경험해 보니, 정말 많은 도움이 필요 하겠구나 라는 것을 느껴요. 나 하나 나선다고 해결될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나라도 먼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2. 금강산도 식후경 - 식사

농활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새참일 것이다. 비록 도시에서 먹던 기름기 흐르는 고기는 없지만, 고기보다 더 맛있는 반찬이 시장 아니겠는가. 일한 후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먹는 새참은 말그래로 최고였다. 직접 재배하신 무와, 여러 가지 채소들로 만들어서 인지, 혹은 오랜시간 축적된 요리 노하우의 산물인 건지, 정말 반찬 하나하나 최고의 맛이었다.

농활에 가면, 새참도 먹긴 하지만,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자급자족 요리이다. 각각 조를 짜서, 조별로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한다. 식사 당번이 된 조는 그날 일은 나가지 않고, 대신 식사재료부터 요리 까지 전부 책임을 진다. 요리에 별 연이 없던 국민*인도 이때만큼은 두 팔을 걷어 부치지 않을 수 없다. 요리 과정 하나하나 각자 맡아 하나의 요리를 완성 시켰을 때 뿌듯함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어머니들의 손맛을 따라갈 순 없지만, 우리가 직접 만든 감자전, 어묵조림, 햄 볶음, 제육볶음 등의 음식 역시 최고였다.

 

 

3. 열심히 일한 자, 놀아라!

농촌에 농사일을 도와주러 오긴 했으나, 정말 하루 종일 일만 하진 않는다. 농사일과가 끝나고 나면 숙소인 마을회관에 돌아와, 돌아가면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후 본격적인 놀이마당이 시작된다.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원카드, 도둑잡기와 같은 카드게임, 몸으로 말해요와 같은 오락게임을 하거나, 노래방 기계로 노래실력 춤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사실 도시에 있다면 굳이 시간 내서 하지 않을 게임에 국민*인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사양 pc나 닌텐도가 없으면 어떠랴. 굳이 그런 게 없어도,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심지어 내 손에 조커 한 장만 있다면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이렇게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농활이기에 가능한게 아닐까. 
한 참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덧 어둑어둑 해 지고, 일나 간 모든 국민*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앉아 쌩얼로 무장해제 하고 나니 다들 표정이 편해진다. 꾸밈없는 자기 자신을 보일 수 있는, 보일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더 편안하게,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농활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기서의 관계를 그리워하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데 있는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단비가 내려 어느 정도 해갈되긴 했지만, 오랜 가뭄으로 인해 감자와 양파 파 등의 채소 값이 폭등했다. 이로 인해 도시 사람들은 더욱 더 허리춤을 졸라매게 되고, 식탁 위의 반찬 수는 점점 더 적어진다. 이처럼 농촌의 현실은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의 현실과 도시의 상황을 분리해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다른 국민*인들도 농촌연대활동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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