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 사람을 찾습니다 #11] 요트디자이너, 박철훈을 만나다

‘슈퍼 요트’ 시장에서 동양인 디자이너로 당당히 자리 잡은 요트디자이너, 박철훈씨는 한국인 중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탐험하고, 우리보다 먼저 미래를 바라보는 선진 사업을 경험하고 직접 참여하는 일을 즐길 줄 아는 탐험가이다. 그는 2008년도에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영국 런던에서 2년 과정의 영국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자동차 디자인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시절부터 인턴과 졸업 작품전 스폰서십을 제공해 준 Palmer Johnson Group(미주 대륙 최대 슈퍼 요트 제작 회사)에서 현재 디자이너로 근무 하고 있다. 모나코에서 요트디자이너로서 꿈을 펼치고 있는 박철훈씨를 만나보자.

 

 

'요트 디자이너'라는 꿈을 키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태어난 곳이 한국 조선 사업의 중심지 울산입니다. 아버지께서도 39년 째 현대 중공업에 근무 중이시고요. 어릴 적부터 바다는 항상 곁에 있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다 옆에서 사는 줄 알았답니다. 가끔 아버지께서 회사 구경시켜주실 때마다 본 300미터 정도 되는 배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걸보면 그 경이로움에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제가 자라온 주변 환경과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그 느낌과 제 전공인 디자인의 접점이 요트 디자인이 제가 가야할 길이란 걸 대학생활 중에 깨닫고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요트 디자이너의 꿈을 향해 준비해 갈 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요, 언제가 가장 힘들었고 고난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영국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영국의 자랑이자 전 애스턴 마틴, 현재 재규어의 수석 디자이너인 이안 칼럼 (Ian Callum),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우디에서 기아 최고 디자인 책임자로 옮긴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 등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배출한 1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 입학을 할 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답니다. 하지만 최고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제가 설 자리가 없어보였습니다. 매일이 좌절의 연속 이였죠. 학교의 커리큘럼 또한 자동차 위주로 짜여 있어서 미학적인 관점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되었지만 여름 방학 기간 중에 가져야할 인턴도 자동차 기업 위주여서 많은 혼란을 겪었답니다. 과연 남들처럼 자동차로 가서 안전하게 인턴을 마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불확실한 요트를 고집해야 하는가 라고요.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 믿어온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결정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가 가는 길이 항상 옳은 길만은 아니며, 더 경쟁이 치열하며 살아남기 힘든 경우도 있답니다. 나만의 장점을 살려서 내가 믿는 길을 개척하시길 바랍니다.

 

 

현 직장에 입사하게 된 경로가 궁금한데요, 입사를 위해 어떤 준비가 가장 필요했나요?

런던에서 대학원 시절 많은 메이져 자동차 회사들이 여름 방학을 맞이한 우수한 인재들을 선점하기 위해서 학교 측에 인턴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대학원 커리큘럼 자체가 자동차에 집중되어있다 보니 요트 회사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튜터가 건네준 슈퍼요트 연간 도록에 수록된 회사 리스트를 가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5개정도 회사를 리스트로 작성해 이 메일로 연락을 취한 후에 포트폴리오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독일 자동차 회사와의 최종 인터뷰와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의 인턴이 확정된 와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Palmer Johnson Group 회장님이 직접 연락을 해주셔서 바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사람과 만나 일을 해보기 전에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제작에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내용도 충실해야겠지만 내 작품이 검토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슬픈 일은 없겠지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해 볼 인사 담당자의 시선을 끌기위해서 직접 고화질 프린터를 구입해서 출력한 후 책도 A4용지보다 약간 크게 제작해서 획일적으로 제작된 다른 이들의 작품과 함께 있을 때 조금 더 튀어 나오게 제본을 하고, 표지를 일반 종이가 아니라 가죽 느낌의 천을 하드커버에 싸서 시선도 끌고, 책을 만지고 넘길 담당자에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전략을 세웠고 결과적으로도 많은 인터뷰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통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구체적으로 작업의 영감을 얻는 방법은 없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이 있습니다. 스케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자동차나 요트의 똑같은 모습을 수 십장씩 그린다거나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은 하되 평소에 저장을 해 놓거나 자주 접촉하려고 하는 것을 피하고 작품의 전반적인 이미지만을 기억하려 합니다. 사람은 반복적인 행동에 익숙해지는 습성이 있어서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계속 그리거나 보게 되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몸에 베어버리게 되면 오히려 그게 본인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작업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주세요.

2012년 5월 대학원 졸업 작품인  Valkyrie 요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기존 요트 선체에 쓰이는 일자형 모노 헐(mono hull)이 아니라 보조 날개가 달린 트라이 마란 헐(tri-maran hull) 형태의 헐을 기본 토대로 디자인했는데 Palmer Johnson Group에서 럭셔리 요트 업계에선 최초로 시리즈 요트에 적용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2012년 9월에 있을 모나코 요트 쇼 대중에 공개할 목적으로 1년 동안 선체 디자인을 끝낸 상태였고 업계 특성상 비밀에 붙여 놓아야할 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룹 회장님께서 트라이 마란 헐이 적용된 졸전 디자인을 보시고 만족하시며 흔쾌히 졸전 스폰서십과 선체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전체적인 컨셉은 "개인 요트 오너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떠다니는 섬"이란 주제로 카지노, 극장 그리고 레스토랑 등을 배치하였고 외부 디자인 또한 직선적인 기존의 요트 디자인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곡선들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2012년 졸업 전시회 기간 중 유일한 요트 디자인 이였고 입학 인터뷰 심사 때 약속한 졸업 전시회는 꼭 요트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도록 해준 감격스러운 작품입니다.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트라는 것 자체가 움직이는 운송 수단이자 주거 공간이다 보니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리고 사용자를 위해 최대한의 쾌적한 수상생활을 제공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자연 채광공간과 실내공간을 확보를 하려다가 보면 날렵해 보여야 할 요트 외형이 자칫 무뎌 보이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 세 접점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세련된 요트를 디자인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면서 느낀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뽑는다면 언제인가요?

디자이너로서 항상 최고의 순간은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년 6개월 간 비공개로 작업해 온 Palmer Johnson Group의 새로운 모델이 공개된 2012년 9월 모나코 요트 쇼입니다. 세계 최대의 요트 쇼에서 유럽인들만의 산업이라고만 여겨지던 요트 산업에 당당히 한국인 요트 디자이너로 첫 발을 내딛은 순간 이였죠.  수많은 땀과 노력이 묻어있는 제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현해주고 찬사를 보내줄 때 그간 힘들었던 과정은 몇 배로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요트 쇼가 끝나서 울리는 우렁찬 경적 소리에 저에게 다가오셔서 고맙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시던 회장님의 건넨 한마디는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최악의 순간은 컴퓨터로 작업하는 모든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정전이라든지 컴퓨터가 충돌해서 해온 작업물이 저장이 안 되었거나 저장해놓은 파일이 사라졌을 때 그 먹먹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겠죠. 모두들 ctrl+s의 생활화를 잊지 맙시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을 다니던 학창시절은 당신에게 어떻게 기억되나요?

요트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하고 한국에 조선소를 찾아다니면서 유명하신 분을 찾아다니면서 들은 말은 ‘안 된다.’ 라는 말이거나 조선 공학을 공부해서 유람선을 만드는 게 가장 근접한 꿈이 될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스형 자동차를 생산해 내던 자동차 산업이 경쟁이 치열해 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많은 수요를 발생시켰듯이 현재에 특색 없는 요트의 외형도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저의 막연했던 믿음을 현실로 만들어준 국민대학교 조형 대학은 저에게 있어서 세상 무엇보다도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국민*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정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입니다. 디자인이란 정답이 없고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란 학문에 첫발을 내딛은 후배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정답을 찾아야한다 혹은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창작이라는 그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디자인에 행복해하고 만족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예술가라는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고 잘하는 사람 또한 너무나도 많습니다. 본인의 선택에 불평하지 마시고 꿈을향해 쉼 없이 달려가 본인의 선택이 맞았다는 걸 꼭 증명해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한 방향을 향하는 나침반처럼 변함없는 마음가짐으로 요트디자이너 앞에 펼쳐진 흥미진진한 모험을 계속 해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따라 걷기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믿음과 노력으로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뿌듯한 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국민*인들도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꿈이 있다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일에도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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