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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커피를 홀짝이며 근황을 이야기하다 영화 이야기로 잠시 빠져서는 컨버스와 뉴 발란스를 사기 위해 돌아다녔던,
미아리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 중반을 이야기한다. 주제가 된 영화는 <트레인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 감독의 출세작이자, 1990년대 중반 젊은이들의 불안한 정서를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두 잔의 커피를 거의 다 비웠을 즈음, 감색
블레이저에 푸른 빛이 도는 줄무늬 셔츠와 보타이를 맨 남자가 들어온다. 무두질한 부드러운 검정 가죽 서류 가방이 눈에 띈다.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하고 오는 길이라, 약속보다 삼십 분 남짓 늦었기 때문에 먼저 앉아 있던 둘에게 미안해한다.
흡연석 자리라 출구가 가까워서 솔솔 부는 가을 저녁 바람이 그를 따라 들어온다. 사뿐히 가방을 의자에 두고, 오래간만에 만난 두 디자이너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요새 바쁘지?” 나중에 들어온, 보타이를 맨 디자이너가 묻는다. “태어나서 요즘이 제일 바쁜 것 같아요.” 버는 족족
‘생산비’로 투입하고 있다며, 수염을 기른 남자가 너스레를 떤다.
여기 두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한 명은 서른 살을 갓 넘겼고,
2년 전 자신의 레이블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서상영, 쌈지, MLB 등 남성복 디자이너와 국내 브랜드 디자이너를 거쳤다. 그의 이름은 지일근이고
그가 만드는 브랜드 이름은 ‘인스탄톨로지(instantology)’다. 일회용을 뜻하는 인스턴트(instant)와 학문, 론(論) 등의 뜻을
가진 ?로지(?logy)의 결합으로 만든 반어적인 이름이다. 테일러링에 기반을 둔 남성복을 만드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젊은 디자이너로 독립
디자이너가 된 지 2년만인 올해 정식 쇼룸을 열었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무대용 수트를 만들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는 에이랜드라는 편집매장을
위해 첫 번째 여성복 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되지만 뚫어지게 들여다봐도 30대 중반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의 소유자로, 13년 경력의 노련한 디자이너이다. 남성복 브랜드 ‘본(Bon)’의 디렉터로 국내 내셔널 브랜드 중 최초로 서울 패션
위크에서 컬렉션을 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줄줄이 서울 패션 위크에 참여했고, 그가 디렉팅한 후 본은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단지 수치적이고 경제적인 성장뿐 아니라, ‘본’이란 브랜드 안에 자신이 일하고 살면서 느낀 경험 ? 행복과 즐거움, 실수와 실패,
그리고 희망 같은 여러 감정 ? 을 집어넣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현재 ‘엠비오(MVIO)’라는 남성복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10년 이상 된 고루한 브랜드를 젊고 활력 있게,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남성복의 옷 만들기 방법을 불어넣고 있다.
1971년생의 한상혁(39세). 1980년생의 지일근(30세). 같은 남성복의 영역에서 수트와 셔츠 그리고 타이를 만드는
그들이지만 걸어온 길과 생각, 고민은 사뭇 다르다. 패션 안에서 '클래식 남성복'을 탐구하는 아홉 살 터울 디자이너들의 생생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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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이하 홍):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
한상혁(이하 한): (주)제일모직의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1년째 맡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고, 더 멋진 모습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지일근(이하 지): 국내 내셔널 브랜드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다 디자이너 서상영의 디자인 실장을 거쳐 2년 전인
2007년 데뷔했습니다. 당시 시기적절하게 데일리 프로젝트(Daily Projects) 같은, 국내 디자이너 옷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생겨서
좀 더 상업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부터 남성복만이 아니라 여성복도 같이
시작해요. 남성복의 뻑뻑했던 부분은 여성복에서 더 부드럽게, 상업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성복 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남성복은 기존의 (상업과
비상업적인 부분에 있어) 어중간한 위치에서 보다 옷에 집중하며 풀어낼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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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어떻게 다른가요? |
한: 큰 개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안에 디자인이란 개념이 속해 있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고, 옷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컬렉션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선택해서, 소비자와 바이어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상품화시키는 작업을 하지요. 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매장, 점원, 그래픽, 전체적인 매출의 추이,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지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이고 총괄적인 책임을 지는 작업입니다. 비쥬얼 머천다이징(VMD)과 상품(Product), 그리고
머천다이징(MD)을 함께 아우르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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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엠비오에서 일하시기 전의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
한: 학생 때는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보통 청년이었어요. 별 뜻 없이
대학교 의상학과에 지원했고, 거기서 뭔가 잘할 수 있을 듯한 생각이 들어 졸업을 하고, 1997년에 ‘미치코 런던(Michiko
London)’이란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후 여러 직장을 거치며 지금까지 13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있던 계기는
2004년 즈음, 본이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되면서 국내 내셔널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컬렉션을 도입해서 서울 패션 위크에 최초로
참여했어요. 그 후 꾸준히 제가 하는 작업들이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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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2005년에 본으로 서울 패션 위크에 데뷔하셨는데요. 처음 시작했을 때의 준비 과정이라든지… 처음
시작할 때의 감정을 기억하세요? |
한: 제가 볼 때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시대였어요.
쉬퐁의 임태영, 지금도 여전히 잘하시는 카루소의 장광효, 이신우, 진태옥 선생님 등 주옥같은 파워풀한 디자이너들의 시대였는데 1993~4년
정도부터 내셔널 브랜드들이 디자이너의 감성을 폭넓게 이용하면서 무르익었던 시대였어요. 그러면서 2002년 즈음 다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보화,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서 디자이너들이 잘할 수 있는 분위기로 돌아섰어요. 이전 시대의 브랜드가 자본의 매카니즘으로
디자이너들보다 능숙한 작업을 했다면, 외국에서 구찌(Gucci)의 톰 포드(Tom Ford)나 버버리(Burberry)의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같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형 디자이너의 선행 작업이 이어졌어요. 브랜드 내에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존재가 부각되는 상황이었지요. 브랜드 안에 ‘사람’의 느낌이 존재한다는 것, 단지 브랜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사람의 뉘앙스가
존재하는 비즈니스가 조금씩 생겼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도입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메인 상품(매장 판매용 대량 생산 제품)을
준비하면서 컬렉션을 위한 소규모 상품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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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두 분을 굳이 한 자리에 모신 이유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생각하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
지: 사실 처음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그 많은
디자이너 중에 왜 저일까. 한상혁 실장님은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분이에요. 가장 이상적인 방향을 찾아가시는 것 같거든요. (제가) 나중에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현실화하신 모습을 보면 부럽습니다. 회사 일이란 게 컬렉션과 조율하는 게 상당히 힘들 텐데 중간에서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랑 너무 터울이 크셔서… 제가 말하기 좀 그렇네요.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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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반대로 후배에게? |
한: 일근 씨와 저의 공통점은… 살이 잘 찐다? (웃음) 둘 다 내셔널
브랜드 출신이고 저는 아직도 내셔널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죠. 그리고 좋아하는 옷의 느낌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 일근씨 컬렉션이 테일러링을
기초로 해서, 계속 테일러링을 공부하는 부분은 저도 내셔널 브랜드 안에서 계속 공부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만드는 옷 안에 가지고 가는 것도 비슷하고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선배들을 만나면, 왜 그 안에서 그러고 있느냐, 하는 핀잔도 많이
들어요. 회사에 있으면 개인이 못하는 부분을 할 수 있고, 또 반대도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디자이너이지만 내가 했던 길의 한우물을 파는 방식이
그 자체로 소중한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내쳐지지만 않는다면 (웃음) 그 안에서 작더라도 뭔가 해내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모여
자신을 더 성장시키고 인내하게 만들고, 패러다임을 만들고,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사람이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게 제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요. 계속해서 기업 환경과 남성복에 변화가 생기고 지금 제 역할이 그런 변화에 상당히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일근 씨가 부럽기도 해요. 지금 바쁘고 힘들고 해도 개인적인 작업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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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지금의 고민이 있다면요? 지:
저의 경우는 현실적인 부분이긴 한데, 한동안 뜸하다 요즈음 디자이너들이 다시 활발하게 데뷔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목표나
개인적인 욕심은 존재해야 하지만, 패션은 산업이기 때문에 자본을 가지고 진행해야 합니다. 계속 돈을 쏟아부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현실적인
부분, ‘옷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그렇다고 무작정 옷을 많이 팔려는 고민이라기보단, 상업적인 부분은
여성복에서 해결하고 싶고, 남성복은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잘 만들어진 남성복’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회사 다닐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예전에 놓쳤던 부분들이 올라오더라고요. 예전에는 신경도 안 썼던 옷의 안쪽 부분, 봉제라든지 마감처럼 겉모습만이 아닌
옷의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것에서 최상의 것을 찾고 있어요. 예전보다는 옷의 퀄리티 등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저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세 살 난 아들이 아토피를 겪고 있고
위장이 안 좋아 가스가 차서 걱정이고요. 두 번째는 대기업의 브랜드에 들어가서 새로운 롤모델을 멋지게 창출하고자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잘
적응했으면 하는 것과 그 과정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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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한상혁 씨는 얼마 전 서울 패션 위크에서 엠비오의 두 번째 컬렉션(2010년도 봄/여름)을 마치셨고,
지일근씨도 다섯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시며 두 분 모두 꾸준히 패션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디자이너이자 개인으로서 지금 한국 패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한: 한국 패션이라… 만일 지금 한국 패션 디자이너가 100명이라면 특히
남성복 쪽에서 좋은 디자이너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 같아요. 평균치도 좋아지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결국 자본의 어려움, 자본과의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내셔널 브랜드에서 작업하는 이유이자 배경이 깔려 있기도 하고요. 물론 유럽도 마찬가지이긴 해요. 능력만 가지고는
버텨내고, 시간을 견뎌내고, 자기 것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작년과 재작년에 데뷔했던,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후배 디자이너들이 선배들과
경쟁하고 협력해가는 과정이 (지금 한국 패션에서) 바람직한 모습인 것 같아요. 그게 앞으로 더 발전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 예전에는 식당에서 밥을 시켜서 먹는 입장이었다면, 요즘은 시장에서 재료를
사는 것부터 요리를 직접 하고 먹고 치우기도 해야 하는 입장이라 회사에 다닐 때보다 시야가 많이 좁아진 느낌이에요. 너무 바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까 (서울 패션처럼) 큰 명제에 대해 관심이 적어진 게 사실이에요. 자기가 편안해야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볼 텐데, 잘 못
보거든요. 이런 건 과도기라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동갑내기 디자이너 친구들과 이야길 해보면,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회사도 많이
어렵잖아요. 저희는 더 직접적으로 체감이 되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에 거기에 더 집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컬렉션 위크가 되도
예전처럼 편안한 마음이 아니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고민이 많아 편하게 볼 수가 없어요. 지금이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시기가 아닌가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3시가 넘도록 사무실에 있거든요. 새벽에 일하고 나오는데, ‘옷 하는 게 너무 좋다. 디자이너로 사는 게 너무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회사에 다닐 때는 못 느꼈거든요. 본질적인 것들에 접근하는 과정을 하면서 이 일을 싫어하면 못 하겠구나,
하고. 직접 마네킹에 입혀보고 옷을 만드는 과정을 하면서 오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현실적인 문제들, 가령 결혼 같은 것도
생각할 나이지만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도 생기고. 이제 쇼룸을 연 지 서너 달 됐는데 제일 힘들지만 제일 재밌는 기간입니다. 커다란
문제들에 대한 시각은 좁아졌더라도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혼자 만족하는 것들이 생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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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끔 선배들에게 전화하고도 해요. 더 시간이 지나면 힘들거든요. 가끔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사실 좋죠. 요즘에는 연락도 없고… (웃음)
지: 핑계 같지만
요즘 연락을 못 드리겠어요.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르거든요. 제 주기로 일하는 게 아니라 맞춤복을 하는 손님들 주기로 돌아가는 거라… 가끔 숨
막힐 때도 있어요. 가령 밤에 술을 마시다가, 내일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맞춤 남성복이란 방법은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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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어떤 것이 있나요? |
한: 일을 하면서 드는 성취감은… 점점 매출이 좋아지는 것? 엠비오에
들어온 지 1년이 됐는데 거의 1년 동안 그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했던 부분들. 관리자들과 이야기하고 경영자들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에서, 처음
시작이 쉽지 않았지만 현재는 매출이 너무너무 뛰어오르고 매장도 25평짜리 큰 박스 매장으로 옮겨지고 옷들도 변화가 시작되고 그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껴요. 그런 부분이 정착되면 저는 좀 더 창의적인 옷을 만들 수 있는 배경이 생기는 것이죠.
지:
보통 수트를 처음 입는 손님들이 많아서 불편하고 어려움도 있지만 보람도 많아요. 제가 (수트의) 시작을 잘 해주면,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수트를 입는 사람들이니까. 자기 수트를 입는 젊은 남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좋죠. 다만 수트를 맞추러 오시는 분들의 8할 정도는 회사원처럼
정형화되고 유행을 따르는 분들이지만 2할 정도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며 보람을 느끼죠. 한 번은 할아버지께서 오신 적이 있어요. 배도 좀 많이
나오시고 패션이랑 상관없는 신사분이신데, “여기 양복도 합니까?” 하시면서 예전에 입던 해진 양복을 가져오신 거예요. 20~30년 된 오래된
양복인데, 잘 맞으니 이렇게만 나오면 좋겠다 하셔서 원단을 고르시고 한 벌 맞추셨는데 무척 좋아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또 오셔도 제가 잘 해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껴요.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일’이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8할의 일과 2할의 보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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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요? |
지: 오늘 낮에 새로 만든 옷이 하나 나왔어요. 여성용 매킨토시 코트인데
수량이 많지 않으니까 공장 찾기가 어려워서 너무 짜증이 나는 거예요. 비유를 하자면 ‘프라다처럼 해주세요.’라고 하면 ‘애버크롬비’처럼 나오는
거죠. (웃음) 결국 공장을 몇 번이고 바꾸다 이번 공장을 잡았어요. 사장님도 무뚝뚝하시고 이번에도 좀 힘들겠구나 했죠. 퀄리티에 대한 얘기도
드렸는데 그 정도까진 안 나올 거라며 너무 기대하진 말라고 하셨죠. 오늘 첫 번째 결과물을 받은 건데, 생각보다 잘 나온 거에요.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100점은 아니더라도 50점 정도는 나온 기분. 뿌듯했어요. 기성복으로 제대로 여성복을 만든 게 처음이거든요. 마네킹에 입히고
보니까,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를 떠나서, 아쉬운 게 좀 있더라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 했죠. 퀄리티는 계속 높여가면 되고… 요새는 그런 게
행복해요. ‘앗싸! 사고 안 났어. 자수도 제대로 들어갔네.’ 하는 것들이 행복해요. (웃음)
한:
요즘은 사소한 것들인데 예전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해지는 단계를 걷고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출근과 퇴근이 좀 더 자유로워진 것.
직장인에게 출근과 퇴근이 자유롭다는 건, 끝나는 일이거든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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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어느 정도로 자유로우세요…? |
한: 음… 그래도 가긴 가죠. (웃음) 예전엔 출근할때 늦으면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브랜딩을 하다 보면 저녁때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해야 할 때가 생겨요. 굳이 9시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일어나서 샤워를 15분 동안 하고. 예전 같으면 샤워를 안 하고 갔을 텐데 그런 여유가 생긴 거죠. 집 나갈 때 옷을 한 번 브러쉬로 닦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고. 제가 해야 할 부분 중에서는 팀원들의 능력이 향상되고,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좋은 성과를 내고, 그리고 같이
반갑게 술 한잔 먹고… 그런 분위기들이 행복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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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일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한눈 팔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래요? |
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계속해서 쓰고 있던 동화책이 있었는데
드디어 동화를 그려줄 작가를 찾았어요. 벨엔누보(Bell & Nouveau)라는 빈티지숍을 하는 누보라는 친군데, 얼른 공식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 출판이 되는 건가요?
한: 꼭 출판을 하려고요. 하는 방법은 돌아다니면서 찾아봐야죠. 안 되면 잡지 만드는 형태로 해도 좋고.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면 될 것 같거든요. 두 번째는 ‘패션 저널리스트’라는 분이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같이 무언가 생각했던 것 중에
결론을 하나 내서, 그 부분을 재미나게 풀어보고 싶은 부분이 생겨서, 10월의 마지막 날에 우리 집에서 같이 모이기로 한 게 있어요. 농사와
로컬 푸드, 유기농 식품에 대한 것들이에요.
지: 저는 요즘 직장인 밴드. 올봄부터
5개월 정도 아마추어 밴드를 하고 있어요. 포지션은 드럼을 치고요. 고등학교 때 잠깐 스쿨밴드를 하다 10년 넘게 만에 처음으로 하는 건데 평균
나이가 40대에서 50대라 제가 막내에요. 블루스나 올드락을 커버하는 밴드인데 기타리스트 사장님이 교통사고가 나셔서 2-3주 정도 못 하고
있지만요. 주말마다 합주한다는 게 시간을 많이 빼았기는 일임에도 하고 나면, 일요일에는 마음이 많이 평안해져요. 에너지가 다른 쪽으로 확
쏠렸다가 재충전이 되거든요. 그래서 1월에 준비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하는 친구가 기타를 치고 제가 드럼을 쳐서 라이브로 곡을
연주해볼 예정이에요. 데모 영상도 만들고 연습도 가끔 하고, 자작곡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즐거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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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요즘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친구들이 고민이 많아요. 대학을 준비하거나, 대학에 갔지만 무얼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사춘기 때보다 20대 초반의 열병이랄까, 고민이 더 큽니다. 인생으로든 직업적으로든,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
지: 아무래도 요즘 맞춤복을 하면서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그
친구들을 보면 요즘이 제일 힘들 때거든요. 갓 대학교 졸업을 하고, 인턴십 지원하는 인터뷰 때문에 수트를 처음 맞추는 친구들인데요. 가봉을
보면서 얘기를 나눠보면, 인터넷 때문에 예전보다 남의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많아져서 남들 고민을 더 많이 듣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이
힘들고, 좋고, 잘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듣고 보는 거죠. 머리도 더 복잡해지고. 얼마 전 TV 광고를 보는데 ‘몇 살에 뭐를 해야’ 하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고민이 현실적으로 자신을 더 옭아매는 거죠. 그 기준에 자기가 맞지 않는다 생각하며 내가 도태됐나, 더 노력을 해야
되나, 하면서. 제 생각에는 남의 고민을 더 많이 신경을 쓰기보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해요. 그 부분에 집중하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조금 더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어른이 되지 않을까요. 인터넷을 하면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지지만, 남의 고민을 듣는
것도 덩달아 많아지니 자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한:
개인적으로 제가 학생일 때 못 풀었던 문제를 푸는 방법을 요즘 찾은 셈인데요. 메인 직업과 서브 직업을 갖는 방법이에요. 일근 씨가
옷을 만들지만 밴드를 하는 것처럼,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되, 좋아하는 농구를 열심히 한다든가…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는 꼭 해야 해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지금 하는 일과 음악을 조화롭게 하는 거죠. 나중에 취미가 발전하면 그게 직업이 될 수도 있고요. 20대와 30대에 디자이너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모든 생활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요. 물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 적도 많아서 그만두지
않았겠지만요. 어느 순간을 지나고 보니까 메인 직업은 분명히 각자 해야 할 일은 하되,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찾아서, 건담을 모으고 싶으면
미친 듯이 모으면 되고. 좋아하는 뭔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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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명의 디자이너에게 그들의
길과 일, 성취감과 행복, 고민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길지 않은 시간에 압축된 타인의 인생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지난주 마친 컬렉션
뒤풀이에 가기 위해 한상혁은 발걸음을 서둘렀고 지일근 또한 인터뷰를 핑계로 오랜만에 만난 그와 한잔 하기로 하고, 같이 차에
올라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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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일근. 그와 처음 안면을 튼 것은
2006년이었다. 아직 한적했던 가로수길에 있던 서상영 매장의 디자인 스탭으로 종종 만났던 그는 다가가기 어려운 첫인상을 가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좋아하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가는 패션이란 공통분모로 친해졌다. 몇 살 많은 형의 홀로서기를 지켜보는 감정 반과 젊은 남성복 디자이너가
개척하는 척박한 길을 지켜보는 감정 반으로 그를 지켜본 게 벌써 3년 째다. 그간의 능동적인 움직임 안에 있을 고민을 엿보기도 했다. 작년에
20대를 졸업한 그에게, 30대의 시작은 어릴 때 꿈꾸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닐 것이다. 그는 계속 부딪히고, 지점토로 매끈한 흉상을
빚는 것처럼 아직 과정에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힘들고 바쁘고 정신없는 요즘이지만, 새벽 3시에 작업실을 닫으면서 차가운 바람을 벗 삼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라고 말하는 서른 살의 남자가 지일근이다.
한상혁. 그는 나와 띠동갑이며(돼지띠), 배울 것이 많은 어른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수년 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동네에 있는 몇 개의 맛집(이라기보단, 술집)을 섭렵했다. 가령, 족발을 시키고는
족발집 옆의 순댓국 집에서 순대국만 따로 시키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단순한 '디자이너' 혹은 '어른' 이상의 존재이다. 이야기를 하면
통하는 부분이 많고 그것에 대해 나이라는 잣대로 무시하거나 어린애 취급하지 않고 존중해준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한 브랜드의 수장으로서 그가
행하는 것들은 항상 나에게 자극을 주고, 그가 택한 길이 꿈을 간직한 다른 젊은이들에게 롤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항상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하여 갔고, 그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 밟은 길이 되었다. 지금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가끔 긴
술자리가 생기면 제법 그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식으로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아껴두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다. 두 명의 디자이너와 한 명의 패션 저널리스트가 나눈 대화가,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
취재,글 및 사진_홍석우 (Fashion journalist /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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