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토크人] 한국인 최초 러시아 영화 주연, 배우 박혁수(연극영화98)를 만나다

 한국인이 러시아 영화 최초로 주연을 연기한다. 왠지 모르게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자랑스럽다. 그런데 그가 바로 국민대학교 동문이이라고?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도 힘들다는 연기자의 길을 낯선 땅 러시아에서 개척해 나가고 있는 박혁수(연극영화98) 동문. 그의 이야기가 더욱 더 궁금해진다. 역시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그. 그가 이뤄낸 배우로서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를 빨리 들어보자.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을 것 같습니다. 연기자의 끼를 보였던 특별한 점이 있었나요?    

 저는 잔재주가 많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까불이'로 불리는 오락부장 역, 소풍가면 진행자 역의 친구 있잖아요. 그런 아이였어요. 강남구 대표 농구선수가 되기도 했었고, 유도에도 재능을 보였었어요. 하지만 집안사정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탁구, 핸드볼 국가대표였던 어머니께서 운동선수의 길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결국 운동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스승의 날 일일 선생님으로 오신 원로 코미디언 한주열 씨께 가수 제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연기에도 흥미를 느꼈죠. 국어선생님과 희곡을 읽고 연극을 만들어 본다고 연습을 하고 늦게 귀가한 적도 많아요. 아주 어렸을 때는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직접 지어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는 연기를 하곤 했죠. 고등학교 때는 합창단으로 활동하며 공연도 여러 번 했었어요. 성악과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도 꾸었어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어 내지는 못한 꿈이지만, 가수 오디션을 보고 매번 합격하기도 했었어요. 남들이 겪지 않은 많은 경험을 이미 어린 시절에 겪은 편이죠. 사실 방황도 많이 했었어요. 특별히 연기자의 끼를 보였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호기심도 많고 한번 시작하면 그게 무엇이든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게 특별하다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재능을 지니고 계신데, 왜 연기를 택하시게 되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국민대 연극영화과 학생모집이라는 기회를 만났어요. 시험을 보는데 실기 시험과목인 자유연기가 무엇인지 몰라서 혼자 이야기를 지어내고 노래했죠.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연기가 정말 쉬운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 젊은 연극제라는 공연에서 50넘은 '영주'역을 주더군요. 그 과정에서 나는 말도 못하고 서있지도 걷지도 못하는 배우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진정한 연기자가 되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학교 수업도 찾아다니고 외국에서 오는 공연팀 세미나가 있으면 모두 참여했어요. 책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요. 물론 형편없이 연기를 했었지만 그 무대에서 느껴지는 관객과의 호흡, 내가 나로써 살아있다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내 자신이 '박혁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무대에서 가장 실감 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진정한 연기자를 꿈꾸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대학교에 입학 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된 셈이네요. 국민대학교에서의 생활도 특별했을 것 같아요. 

 학교생활 내내 거의 연기에 미쳐서 살았어요.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것 자체만으로 국민대학교에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가장 특별했던 건 학교에서 만난 스승님들과의 만남입니다. 이혜경 학과장님이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초청해 주셔서 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풍족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은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박 용수 선생님께는 연기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임형택 선생님께 연극이 무엇이고 연출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임도완 선생님께 배우의 신체에 대한 접근법을 배웠지요, 그러다 양혁철 교수님의 러시아식 시스템 연기 방식에 빠져서 오랜시간 아침부터 밤까지 상황극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4학년 2학기 까지 데이트 한번 못해보고 졸업을 했습니다.

지금 러시아에서 연기활동을 하게 되신 것에도 국민대학교 생활이 많은 영향을 주었나요?

 일단 국민대학교 생활이 지금의 제가 러시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러시아에서 선생님들을 초빙해 러시아 기치스 연기 워크샾 을 개최, 그곳에서 저를 기치스로 초청해주신 마리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현대 연기의 근간이 되는 스타니 슬랍스키의 나라에 와서 작업을 하면서 제가 배웠던 것이 이곳 러시아의 감독과 배우들과 연기에 대해 소통할 때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요. 만약 다른 학교에서 공부했다면 힘들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러시아 영화의 주인공으로 연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러시아 연기생활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설명과 소감도 부탁드립니다. 

 러시아에서 활동을 시작한게 2004년 부터일거에요. 처음에는 유학을 와, 언어를 익히면서 스턴트로 활동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30여 작품을 했었고 천천히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동양인 배우이면서 연극영화과 전공 졸업장이 있고, 몸을 잘 쓸 줄 알며, 연기가 능숙한 배우라는 특별한 점들 덕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이죠. 30여 편의 작품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제 5중대 마법의 유물을 찾아서'라는 작품입니다. 단독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다섯 주연 중의 한명이죠. 기획사 영화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오디션 아닌 오디션을 보고 합격이 되었어요.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영화예요. 그리고 더 특별한 점은 제가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한 작품 중 개봉하기로 한 날짜에 개봉하게 된 최초의 영화지요. 하지만 3D영화들의 개봉으로 흥행하지는 못했어요. 배우로써 소감은, 사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보여질 기회를 잃은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거예요. 러시아 최초의 어드밴쳐 영화라 기대도 많이 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고 영화계의 내실을 다져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한국, 러시아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연극, 영화 등 많은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연기활동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연극은 학생연출로 올렸던 구렁이 신랑과 그의 신부란 작품인데 처음으로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왜 이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왜 배우들의 대사는 이렇게 해야 하는가... 등등 하루하루가 이런 고민들의 나날이였는데 당시 제가 머리에 동전 세 개정도의 원형탈모가 오더라고요. 그래도 다들 노력하고 애쓴 결과 좋은 공연을 하게 되었고 저에게는 연극을 대하는 진지함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 처음에 머리를 삭발하게 된 경우인데요, 처음에 주인공을 시켜준다고 머리 깎고, 살도 빼라 요구해서 살을 10키로 정도 빼고 머리를 밀었어요. 그런데 주인공은 다른 중국 사람이 하게 된 거예요. 화도 나고 약도 올랐는데, 그때 마침 처음으로 영화에 주연급으로 캐스팅이 되었어요. 러시아에서는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굉장히 크거든요. 새옹지마라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죠. 티벳 스님 역이었어요. 이 역은 처음으로 악당이 아닌 선한 역이기도 해요. 그리고 액션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라 연기로 뽑힌 것이라는 점도 너무 기분 좋았어요. 그런데 저예산이라 아직까지 개봉을 못하고 있네요. 내년도에 개봉한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화, 연극 이외에도 CF 모델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CF의 경우 처음엔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일했었지요. 한국처럼 CF를 통해 스타가 되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금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저에게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서너 배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였지요. 나중에는 다른 장르정도구나 싶었지만요. 스타킹, 통신사, 쇼핑몰, 보험회사, 식품회사, 팹시 등 많은 종류의 CF를 찍었는데요. 나름대로 깊이가 떨어져도 짧은 시간에 포인트를 찾아내게 하는 좋은 경험인 것도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것이 한국에서와는 또 다른 어려운 점을 가질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처음에 어려웠던 점은 언어의 문제였고, 그 다음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이곳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었어요. 정말 친하게 이야기하고 이제는 내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냉정하게 돌아설 때는 상처도 받지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들과는 다른 정적인 부분에 감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사를 할 때인데 도와달라고 부탁한 한 적도 없는데 같이 공부하던 러시아 친구가 온 거에요. 택시는 비싸다고 둘이서 몇 번을 지하철을 타며 이사를 했지요. 지금도 그 친구와는 형제처럼 연락하고 지냅니다. 지금에 와서는 러시아 사람 한국사람 이런 차이점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도 다 다르잖아요. 단지 외형이 다른 것이지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같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였던 거죠. 생활이나 제도도 적응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로마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처럼 적응할 수 있으면 힘든 부분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수상에 영향을 준 건가요?

 네, 문화부장관상을 한번 받아보았습니다. 주러시아한국문화원에서 대외협력 팀장으로 2년정도 일했거든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우리 우수문화를 러시아에 소개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연극 외 다른 장르의 문화도 알게 되고, 작품들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지요. 항상 작품을 만드는 쪽으로만 살다가 작품을 기획하거나 그 작품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상까지 주시니 저야 감사할 뿐이지요.

러시아 국립연극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교수로 일하게 된 것은 유학을 와서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석사 2년만 계획하고 유학을 왔었어요. 석사 때 배우예술을 전공하면서 무대동작과에 들어갔는데,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과에 등록된 사람이었죠. 논문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학과장님이 남아서 애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했지요. 가르쳐 보면 배우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정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2년차에 큰 변화가 왔어요. 그 결과 무대동작과에서 일을 하며 박사과정을 선택해서 무대동작과 연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학교 홈페이지를 정리하면서 제 사진과 이름이 무대동작과 교수란에 올려졌습니다.
 학생들은 처음에 외국인 교수가 말을 버벅 거리면서 가르치는 말투를 흉내 내고 장난을 쳤어요. 한국과 달리 교수에 대한 존경이나 배려가 없어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결국 아이들과의 언어를 찾았는데 실력으로 인정시키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몸으로 하던 말로 하던 그들이 인정하게끔 하면 그다음부터는 인정과 존경을 가지고 수업을 대하게 되더라고요. 교수가 된 후에는 그런 보람과, 책임감에 연기를 3배는 더 연습하는 것 같아요. 이 소중한 경험은 제가 살아 있는 동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항상 부단히 노력하시는 모습이 멋집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미래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일이 또 있으신가요? 

 저의 마지막 목표는 연기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들이 배우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요. 당장은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 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스스로 연기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기자를 꿈꾸는 국민대 후배들에게 충고나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름이면 항상 학교로 돌아가 특강을 합니다. 그때마다 열정은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후배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리고 요즘은 스타라든가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아이들을 많이 유혹하는 것 같아요. 중요한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남이 하는 일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위해 잘할 수 있는 것들과 부족한 것을 찾아서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네요. 찾아서 노력하고 부딪히다 보면 그쪽의 인맥도 생기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진답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하게 말이죠. 저도 처음에는 일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못하고 다 했어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러다 어느새 영화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몸값도 올라가고 작품도 고를 수 있는 위치가 되더군요. 누군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스스로 움직여 찾아보세요. 좋은 일은 여러분이 필요한 때에 꼭 일어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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