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정권과 여당의 시대 역행적인 지자체장 간선제 추진 / 이호선(법학부) 교수

이 정권과 집권 민주당은 한시라도 자유대한민국의 헌법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궁리를 하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는 모양이다.

 

온 국민의 시선이 대통령 선거에 쏠린 사이 문재인 정권의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지방의회 의원들이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말로는 주민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 의도가 주민들로부터 단체장 직선의 기회를 빼앗아가겠다는데 있음은 누가 봐도 뻔하다.

 

행안부 안에는 지자체장을 지방의회 의원들이 선출하거나,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 직선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단체장의 인사·감사·조직·예산 편성 권한을 지방의회에 나눠주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지방의회의 권한을 확대하고, 단체장 선출을 위한 주민의 참정권을 차단하거나, 주민이 뽑은 단체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여 지방의회에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자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치의 제도가 없이 자유로운 정부를 가질 수는 있지만, 자유의 정신은 가질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지금 우리 지방자치는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모두 주민 직선으로 뽑고 있다. 풀뿌리 정치에서나마 직접 민주제를 보완하고 주민의 자치역량을 배양한다는 측면에서 직선제는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이다.

 

그런데 만일 이 두 가지 중에서 굳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까. 필자는 지방의회라고 본다. 그 이유는 지방자치에서의 대의는 원형(原形)이 아니라 변형(變形)이기 때문이다. 자치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는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타운미팅(town meeting)이다. 지방자치를 하면서도 지방의회 의원을 뽑아 대의정으로 운영하는 것은 자치의 본질에 비춰볼 때 차선이지 최선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정보 통신의 발전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점점 다양해지고, 주민들의 여론이 실시간으로 반영될 여지가 많아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는 주민의 진짜 의사와는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대의(代議)’라는 중간 유통망을 걷어내는 논의를 해야 할 때이다.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 어째서 꼭 중간 유통상, 그것도 중앙 정치의 심부름꾼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주민 혈세로 급여까지 줘가면서 민의(民意)를 전달해 달라고 해야 하는가. 지금의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회는 가성비가 너무 낮다.

 

대신 지방행정의 책임자인 단체장의 전문성, 역량, 공직자로서의 덕성 등은 주민들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견제 기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가장 실효적인 수단은 주민에 의한 선출과 퇴출이다.

 

그럼에도 지금 행안부는 지방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단체장에 대한 주민의 견제 기능을 사실상 없앰으로써 지방자치의 본질에도 반하고, 시대의 발전에도 역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초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89곳이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지방의회를 과연 모든 자치단체에 다 두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해야 한다.


물론 헌법 제118조 제1항이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고 못을 박고 있어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향후 헌법 개정이 될 때는 반드시 ‘의회를 둘 수 있다’로 바꾸어 주민들의 선택에 따라 탄력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행안부의 위 방침은 지방자치법상 단체장은 직선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의 특례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6월 국회는 이 특례 조항을 담은 지방자치법을 통과시킨 뒤 보도 자료를 통해 “어떠한 기관구성 유형을 선택하더라도 입법기관과 집행기관 간에 상호 견제할 수 있는 보완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방권력을 내각제처럼 운영하면서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적 수사로 말장난 하려 든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오른발 빠지기 전에 왼 발을 내딛고, 왼발 빠지기 전에 오른 발 내딛으면 사람이 물 위로 걷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아주 예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전제정부가 공화정부보다 노예에게는 더 유리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노예 농장주들이 식민지 의회 의원이거나 선거인인 경우에는 노예에 대한 대접이 나아지지 않지만, 독단적이긴 하나 행정 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 때는 주인들이 함부로 노예들을 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미스의 통찰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현실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역에서의 토호들이 지방의회를 차지하고 있을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는 행정 권력을 가진 단체장이다. 물론 단체장 역시 정파적이고 토호 중에서도 가장 나쁜 토호일 가능성이 있지만, 주민 직선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그래도 그에게 호민관(護民官)의 역할을 기대할 여지는 있는 것이다.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은 부패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두는 것과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장동 게이트만 하더라도 뇌물을 약속받고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에 앞장선 혐의로 구속된 최윤길이 성남시 의회 의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시의회 의원직을 그만 둔 그는 지난해 2월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채용되면서 성과급 40억원을 약속 받았다. 지방입법권과 지방행정권이 그나마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대장동 게이트 같은 사건이 터지는데, 지역에서 대부분 각종 자기 사업을 하면서 지방의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간선제를 통해 단체장 선출권까지 쥐게 되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일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부패는 소수가 관여할 때 더 쉽고, 적발은 반대로 더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런 부패 범죄는 은밀하게 시간을 두고 진행되면서, 나중에는 세습화, 계급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부패가 만연하고 노골적인 후진국들의 행태를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으로 만들어내는 돈 맛을 본 운동권 정권이 대선 정국을 틈타 대한민국에 대한 본격적 ‘설계’에 들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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