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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서재는 피난처이다
사실은 질문 받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재를 무엇이라고 해야 적합할지를 말이죠. 그러다가 생각이 난 것이 피난처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사는 게 쉽진 않잖아요. 힘들기도 하고 '사는 게 전쟁 같다'고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야말로 살다가 난리가 났을 때 피난할 수 있는 곳, 혼자 뒤로 물러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쉴 수 있는 곳이 서재인 것 같아요.
하여간 저는 소설이에요, 편식이죠
하여간 저는 소설이에요. 편식이죠. 시도 열심히 읽었었는데 그래도 소설이에요. 요즘은 거의 못 읽지만 좋은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해요. 한국소설, 외국소설 구별은 없지만 외국소설을 더 많이 읽은 거 같아요. 이상하게 외국소설을 많이 읽은 거 같고 한국소설은 읽기는 정말 많이 읽었는데 저한테 왠지 크게 와 닿은 책을 별로 없었어요. 그 중에서 한 권 뽑으라면 '위대한 개츠비'라는 책이에요. 그 책을 보고서 굉장히 좋았어요. 이야기 거리가 많은 책이었죠. 그리고 하루키 소설을 좋아했어요.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작가였어요. 전체 작품을 다 읽은 유리한 작가인데 요즘에 나오는 장편들은 잘 모르겠고 90년대 중반 정도쯤에 나왔던 단편들도 인생에 지표가 됐어요.
95년 10월 춥다
책 읽을 때 습관이 있었어요. 최근에 생각이 난 저만의 습관이에요. 책 앞에다가 한마디 씩 꼭 써놨었어요. 책을 산 날짜와 그때 저의 느낌. 어떤 책은 단지 '95년 10월 춥다'라고만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짧더라도 꼭 무언 갈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죠. '이제 뭐하지'라고 적어 놓은 책들도 있어요. 그 당시 저에게는 책을 사서 내 책이라는 표시에 썼는데 지금 보면 굉장히 재밌어요. 95년도에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지금 읽어보면 예전 일을 생각하면서 참 재밌죠.
지하철에서 읽었어요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읽었습니다. 집이 멀어서 지하철 타고 통학을 했는데 그 당시엔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지하철이라는 곳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단지 갇혀 있는 곳이다 보니까 자연스레 책을 꺼내게 된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아침에 학교 갈 때 집에 갈 때 책을 읽는 시간이 생기니까 좋았죠. 하지만 정작 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지금은 읽는 장소가 연구실 아니면 집. 늦게 식구들이 다 자면 그때 읽죠.
'당신이 이구아나를 낳으면 우린 그 이구아나를 기르면 돼.'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문장을 외우는 것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심지어는 별 걸 다 외웠어요. 하루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도 아직 기억이 날 정도에요. 하나 딱 좌우명처럼 기억하는 문장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이에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어지거든 그 사람이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만큼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라.' 그런 뜻의 문장이었습니다. 또 있어요.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보면 '당신이 이구아나를 낳으면 우린 그 이구아나를 기르면 돼.'라는 문장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주인공 두 명이 사촌지간임에도 결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근친상간이니까 기형아가 나온다, 돼지꼬리 달린 인간이 나온다는 놀림에 아기를 못 가져요. 그에 너무 화가 난 주인공은 자신들을 놀린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방으로 돌아와 자기 부인한테 하는 말이었어요. 이구아나를 낳으면 이구아나를 기르면 된다는 거. 그러니까 일이 닥치면 그때 해결하면 되지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런 거죠.
어떤 형식으로든 읽은 것을 남길 수 있는 방법
지금의 20대에게 독서의 이야기할 때에는 매체가 많아졌다는 이야길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제가 말하는 책이라는 것은 종이로 인쇄된 걸 말하는 건데, 그걸 안 읽게 되는 것은 요즘 20대가 독서습관을 잃어 버렸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20대일 적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것을 읽을 것 같아요. 다양한 매체에서 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책을 안 읽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들어오다 보니까 많이 읽는데 그에 반해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형식으로든 읽은 것을 남길 수 있는 방법만 찾는다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오명을 쓰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
< 꿈 이야기 >
거의 요즘 말로 '덕후'? 그런 거 있잖아요
사실은 처음 고등학교 때부터 건축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언 갈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건축을 하면 재밌고 잘할 거 같았습니다. 프라모델엔 환장하는 수준이었죠.(웃음) 거의 요즘 말로 '덕후'? 그런 거 있잖아요. 하나에 빠지는 성향이요. 프라모델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님하고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80년대 중반 때 저희 아버지가 어떻게 수소문을 하셔 가지고 저를 데리고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로 데려가셨어요. 그 안에 있는 프라모델 매장을 데려가서 엄청나게 많이 사주곤 하셨죠. 하여간 만드는 건 정말 좋아 했었어요. 잘하기도 했고요.
좋은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제 작년 정도까지 꿈이 있었습니다. 건축가가 되는 것이었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아요. 아시겠지만 미술을 한다고 다들 미술작가가 되지 않는 것처럼 건축과를 나온다고 해서 전부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학교에 왔으니까 교수가 된 거 잖아요. 하지만 저는 계속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루게 되었죠. 그래서 현재의 꿈은 좋은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것 입니다.
< 건축 이야기 >
원래는 사과를 배어 물은 콘셉트가 아니에요
원래는 사과를 배어 물은 콘셉트가 아니에요. 사실 처음 구상한 모습은 아이스크림을 떠먹은 모습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샀을 때 깨끗하게 하얀 모습에서 한 스푼 떠먹은 모습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 모습을 '사과를 배어 물은 모습'이라고 건축주가 이야길 한 거에요.
집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어요. 아주 전형적인 오각형이죠. 하지만 오각형일 필요가 없습니다. 집 안에 책상, 계단 등 이것저것들을 집어넣다 보니까 오각형의 모양하고 내부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아요. 그 일치하지 않은 모습, 즉 자투리 공간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부분들을 덜어 낸 거 에요. 근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사과니 아이스크림이니 하는 그런 말들이 우연히 나오게 된 것이죠.
확실한 테마가 있던 집이었기에 건축하기는 쉬운 편이었죠
건축주가 찾아와서 첫마디가 '자존심 센 집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산이 많지 않아 큰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작아도 자존심이 센 집을 지어달라는 말이죠. 건축주가 자기 스스로 지적 허영심이 있대요. 그래서 책도 많이 꽂아 놓게 되었어요. 서재의 느낌이 들 정도로요. 또한 어떻게 책들을 잘 보이게 하며 또 어떤 면엔 약간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게 필요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과도하게 표현이 된 부분도 있지요. 일반 집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책장이 들어가야 할 것은 사실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건축주가 책을 많이 채웠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3분의2도 책을 못 채웠더라고요.
'서재'라는 아주 확실한 테마가 있던 집이었기에 건축하기는 쉬운 편이었습니다.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하다 보니까 아이들한텐 좋을 것 같더라고요. 몇 번 갔을 때 느낀 건데 그 아이들이 자신의 집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책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이 가까이에 있으니까 빼서 보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며, 그 친구들이 20대, 30대가 됐을 때 다른 친구들보다 확실히 다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봉일범 교수님 건축 기사 http://www.kookmin.ac.kr/bbs/press/3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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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조르주 페렉 저 | 세계사 | 1996년 | 성곡도서관 링크
'사물들'은 아방가르드 문학 집단에 속해있던 조르주 페렉이 쓴 책이에요. 이 사람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에요. 문자 그대로 어떤 것을 묘사하는 책이죠. 무엇이던 모든 사물들을 중심으로 아주 특이하게 묘사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도 세상을 볼 수 있고 살수 있구나.'하고 느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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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순례자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 한나래 | 1995년
'이방의 순례자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인데, 남미 소설이에요. 그래서인 지 남미 소설들의 특징이 베어 나와요. 상상할 수 없던 아주 기발한 상상, 현실적이지 않은 상상, 구태의연한 것들이 아니고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상상을 자극하는 그런 책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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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저 | 문학사상사 | 2006년 | 성곡도서관 링크
하루키 단편집 중에 제가 제일 최고로 치는 책이에요. 하루키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들 중의 대부분이 가볍다는 거예요. 후기 산업사회의 방황하는 청춘들을 다룬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렉싱턴의 유령'은 달라요. 삶이 얼마나 취약한가라는 하루키만의 주제가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정말 잘 드러나 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도덕적인 소설이죠. 사람이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갖고 사회적인 폭력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교훈적은 말도 많죠. 하루키 답지 않게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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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 부북스 | 2011년 | 성곡도서관 링크
'위대한 개츠비', 이건 정말 최고의 책이에요. 기가 막힌 이야기가 많아요. 아까도 제 좌우명 삼을 만큼의 좋은 구절이라며 소개해드렸듯이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책이에요.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말이지,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누리고 있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라는 구절도 있고 또 '판단을 보류한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멋진 말들이 많아요.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음미해서 읽다 보면 문장 문장들에 빠져서 읽게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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