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시작한 것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가 끝이 나고 어느덧 학기의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푹 쉴 수 있겠지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밀려드는 폭풍과제 탓에 힘이 쭉 빠지는 시점이다. 정말 지난 방학이 너무나도 그립고, 그저 멀어 보이기만 하는 다음 방학이 하염없이 기다려질 뿐이다. 이토록 정신없이 흘러가는 학교생활에 지난 기억들이 점차 흐릿흐릿해지는 이 맘 때쯤 우리는 지난 방학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우리의 국민*인들은 지난 방학을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어떠한 색깔의 마음으로 방학을 보냈을까?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난 여름의 방학을 들여다보자.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가면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 들어오니 바쁜 생활 때문에 잠시 그러한 꿈을 잊고 살다가 3학년이 되고 나서야 해외 봉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라는 단체에서 WFK 청년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어요. 2박 3일의 발대식 및 기본 교육과 1박 2일의 심화 교육 끝에 우리는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의 외곽지역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고 12박 14일 동안 평일 오전에는 던꺼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 수업을 해주는 교육봉사를 하였고 오후에는 담벼락 짓기와 환경 미화 등의 노력봉사를 하였어요. 그리고 주말에는 라오스 대학생들과 만나 문화교류를 하며 라오스와 우리나라의 문화를 나누었습니다.
라오스라는 나라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었죠. 서툰 라오스어로 수업을 하였지만 그 말을 듣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수업을 잘 따라와 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웠고 크게 기뻐해줘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 봉사와 노력 봉사를 진행하며 나눔의 기쁨을 느끼고 우리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점도 좋았지만 도리어 그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온 점이 저에겐 더욱 크게 느껴지고 때문에 그 때의 순간들을 떠올리면 뭉클한 마음이 들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이나 우리가 만났던 라오스 사람들과 정도 많이 들고 이 때문에 봉사 기간 동안 더더욱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봉사 활동이었지만 단순히 봉사가 아닌,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경험이었어요.
대학생에게 방학이라는 것은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는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학기 중에 하지 못한 공부를 하며 지식을 쌓을 수도 있는 시간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처럼 해외 봉사 활동에 다녀와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배워 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처럼 학기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학교를 다니며 생활하지만 방학 중에는 각자만이 생각했던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성장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뮤지컬을 줄곧 좋아해왔기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곧바로 뮤지컬 동아리 “더 뮤지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1학기 동안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며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극이 정기 공연으로 정해지면서 지금 아니면 이 공연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받게 되었고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에요. 옛 연인과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 남자 주인공이 먼 훗날 선생님이 되어 남자 제자에게 옛 연인을 다시금 느끼고 점차 커지는 감정에 혼란에 빠지게 되는 뮤지컬입니다. 다소 파격적이라고 느낄만한 소재를 아름다운 노래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잘 풀어내 많은 매니아층을 만든 뮤지컬이에요.
아무래도 개강하면 현실적으로 긴 연습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방학에 연습의 많은 부분을 투자했어요. 방학 초반에는 평일에는 매일 12시부터 9시 반까지 연습했고 방학 중후반부터는 연습량이 부족한 것 같아 10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을 진행했어요. 간혹 부족하다 싶으면 자발적으로 휴일에도 나와서 연습을 진행했고요. 솔직히 매일매일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에 온 후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연습을 하다 보니 다른 학생들처럼 방학 중에 여행을 간다거나 개인적인 공부를 할 여유가 없었고 춤, 노래, 연기가 생각보다 무리가 커서 몸은 몸대로 너무 힘들었기에 솔직히 좋아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처음 해보았던 어색한 연기가 점차 나아지고 다듬어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더욱 힘이 나기도 했죠.
사실 어떠한 교육도 받지 않은 일반적인 대학생이 연습하기엔 어려운 연기와 노래들이 있는 뮤지컬이었기에 방학이라는 긴 시간을 모두 투자해야만 했죠. 다르게 생각하자면 그렇기에 저에겐 그리고 배우라는 자리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든 학생들에겐 더욱 값진 방학이었어요. 특히나 화음이 많아 소화하기 어려운 단체곡이라던가 캐릭터마다의 섬세한 감정선을 이해하고 표현해야하는 연기와 노래들, 극의 짜임에 맞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든 동선들과 안무를 연습한 기억들은 제겐 어디서 얻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고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때문에 11월 공연을 앞둔 저에게 아직 이른 표현일 수는 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에겐 방학이 스펙과 여가의 시간이었던 방학이 제겐 열정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여름방학에 국민대 자작자동차 동아리 KORA 소속으로 군산시에서 열리는 K-SAE Formula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저희 동아리에서는 매 여름방학마다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저는 작년 군대에서 제대한 이후로 천천히 동기들과 후배들을 모아 한 팀을 꾸렸고 방학을 포함한 6개월이란 기간 동안 설계 및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네 개의 팀으로 나뉘어져 대회에 참가한 저희 KORA는 각각 최우수상, 금상, 동상,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중에 저희 팀은 금상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상도 상이지만 군대 가기 전에 동기, 후배들과 군 제대 후 같이 차를 만들자고 약속했었고, 그 약속대로 제대 후 다시 만나서 저희 차를 만들 수 있었기에 저희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대회였고 값진 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더러 방학동안 기숙사와 작업실을 오가며 함께 고생해준 팀원들과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를 해주신 선배님들에게 더욱 감사한 상이기도 하네요.
대회당일 드라이빙과 파트 팀장을 맡은 저는 팀원들에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내내 긴장한 상태였습니다. 혹여 차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코스에 들어가기 전 미처 점검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점검하고 머릿속으로 코스를 숙지했죠. 특히나 대회 시작 전 시동을 켜고 대기할 땐 열띤 응원소리가 사라지고 제 숨소리만이 귓가에 울려서 더욱 긴장감이 커졌죠. 뿐더러 대회 당시에 비도 많이 왔는데 빗속에서 타는 건 익숙하지 않았기에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습니다. 긴장감 넘쳤던 대회가 모두 끝나고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수상의 기쁨이 있기도 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더 좋은 해결 방안이나 더 좋은 설계를 왜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죠. 하지만 욕심을 부리면 가까운 기회도 놓치게 된다고 지금은 이번 대회에서 얻은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F-SAE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용돈이 필요해서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혹은 중독성 있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밤을 지새우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운 것 같아요. 물론 아르바이트도 대학생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고 게임 또한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값진 시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대학생의 방학이라면 학기 동안에 할 수 없었던 것이나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새로운 취미 또는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도전을 하며 보낼 수 있는 큰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방학이 곧 진정한 방학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선일수는 있다는 생각인거죠. 그렇다고 이러한 도전이나 하고자 하는 일들이 꼭 대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뿐더러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저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찾아가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방학을 좀 더 유용하게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다음 방학을 기다리며 더욱 힘낼 생각입니다.
국토대장정을 하게 된 계기는 저에게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였어요. 학기 중에는 느낄 수 없는 제 자신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뿐더러 계절학기 강의와 아르바이트만으로 여름방학이라는 3달의 긴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깝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남다른 추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국토대장정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땅을 직접 걷는다는 것이 꽤 마음에 들어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신청을 하게 되었죠. 국토대장정을 진행하는 장소가 제주도였던 것도 굉장한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7월 말 제주 공항을 시작으로 15박 16일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8시부터 9시 사이부터 시작해, 하루에 짧으면 7시간, 길면 8시간 정도를 걸었어요. 오전 3시간 걷고 밥을 먹고 오후 4시간 걷고 저녁을 먹는 형태였죠. 솔직히 걸을 때에는 걸어서 너무 좋은 것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컸던 것 같아요. 특히 목표지에 도착하기 1시간 전이 너무 힘들었어요. 마치 군대에 다시 돌아가 행군 훈련을 하는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힘이 들 때마다 동료들과의 파이팅으로 극복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팀장이 왜 이렇게 기합을 넣나 싶었는데, 걸을수록 그러한 파이팅과 동료와의 우애들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또 노래를 부르며 걷는 것도 정말 좋았는데 아마 YB의 "나는 나비"를 가장 많이 불렀던 것 같아요. 이제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때 걸었던 기억과 풍경이 되살아날듯 하네요. 또 중간 중간마다 나오는 팥빙수와 탄산음료 같은 부식에 환장하고 먹기도 하고. 숙영지에서 장기자랑, 게임을 하기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 만큼 유쾌한 추억이었죠.
주위에서 "왜 군대에서 행군을 그렇게 많이 하고 굳이 대장정까지 참여하냐"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어요. 하지만 그건 대장정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의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다녀오고 나서 얻은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비롯해, 스스로에게 얻는 자신감, 추억.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오직 경험한 자만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15일의 여정을 마치는 마지막 날, 다시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뭉클한 희열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져요. 어느덧 3학년 2학기가 되었고, 문득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곤 하는데, 누군가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태껏 방학을 더욱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이러한 가슴 떨리는 경험을 더 빨리, 더 많이 접했다면 어땠을까 싶죠.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에게 방학이라는 것은 우리만의 굉장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후배님들이 이러한 대학생의 특권을 멋지게 활용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사실 처음 농촌 봉사활동에 지원했던 계기는 농촌에 가서 봉사를 하는 점이 꽤 재밌게 느껴졌기도 했고, 이러한 봉사를 통해서 학점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지원을 할 당시에 생각으로는 적은 인원의 대학생 몇몇이 힘을 합쳐서 농촌 생활을 경험하며, 따뜻한 힘이 되어드리고 오는 그림을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출발하는 당일 날 보니 3~400명은 되어 보여서 솔직히 조금 당황했던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생각보다 큰 규모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죠. 출발시간이 되어 많은 인원 사람들은 각각 3~40명의 인원씩 나뉘어져 버스에 올랐고, 따로따로 봉사를 진행할 마을로 떠나게 되었죠. 저희 버스는 충북 제천의 송계마을로 떠나 9박10일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을에 도착하고 주로 도왔던 일을 나열하자면 마을의 특산물인 양파 캐기, 양파 골라내기, 양파 까기 등등 양파에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농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기에 엄청난 양의 양파를 보고 있자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양파를 접했을 때 너무나도 매워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막연히 적응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했지만 마지막 날까지도 울면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참 맵더라고요. 그렇지만 아저씨, 아주머니 분들이 워낙 정감 있고 친근감 있게 잘 대해주시고 쉬는 시간과 새참도 잘 챙겨주셔서 너무 편한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일을 도와드릴 수 있었어요. 또한 함께 일했던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일을 하며 많이 가까워졌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간혹 아저씨, 아주머니들 생각이 나서 농사라는 것이 일은 조금 고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뜻하게 정이 스며들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농사일을 도우며 평소에 먹는 음식들이 이렇게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어요. 솔직히 표현하자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험해보니 더욱 와 닿았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아요. 어떠한 것을 경험해 본다는 것이 그것에 대한 지식을 안다는 것과 이런 의미에서 다르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죠. 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을 하시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보며 내가 진짜로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힘들다는 핑계로 엄살 피우거나, 게으름 피운 생활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반성하기도 했어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면서 대학생의 방학만의 장점, 혹은 의의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학기 중에는 할 수 없었던 보다 새로운 경험으로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이 가장 뿌듯했고, 이것이 곧 다음 방학이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해요.
방학이 대학생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자유도라고 볼 수 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기 중에는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만큼의 공부의 양, 혹은 스케줄이 지켜져야 하지만, 방학이라는 기간은 이러한 모든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꿀맛 같은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대학생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꿈을 꾸고 그들의 시간을 할애하여 방학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방학이라는 시간이 꼭 먼 미래를 위해서, 혹은 나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서일 이유는 없다. 이러한 자유로운 시간까지 다른 누군가의 잣대에 맞춰 생각해야 한다면 인생이 너무 고달프게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푹 쉬는 것도 그만의 동기부여일 수 있고, 게임을 하는 것이 그만의 가치관일 수 있다. 다만 내가 계획한 이 방학이 본인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시간일지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 적어도 훗날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만의 방학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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