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 국민인!!
[인터뷰… 공감]안신권 광주 나눔의 집 소장 / 대학원 행정학과 사회복지학전공 99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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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전공한 그가 17년전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닐때 우연히 받은 권유, 아내 응원 힘입어 인연맺어
하지만 (정치인에 의해)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정치논리에 의해 소외 당하기 십상인 곳. 바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소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이다. 나눔의 집은 그 시설만 놓고 보면 사회복지시설이다. 만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양로원이다. 일반 양로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부대시설로 역사교육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한 인권박물관)과 '국제평화인권센터'가 운영중이다. 이곳의 운영을 맡고 있는 안신권(56) 소장은 나눔의 집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기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방문해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17년, 안 소장은 막연한 선입견으로 이곳을 바라봤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2000년 12월이었던 듯하다. 아내와 우연한 기회에 나눔의 집을 찾았다. 당시에도 이곳은 아픔을 간직한 할머니들이 모여 계시는 곳으로 언론에 오르내릴때라 호기심반 기대감 반으로 찾았다"는 안 소장은 이곳에서 만난 일본 여성에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단국대에 도예를 배우러 온 일본 여성분이셨는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봉사하는 모습에 느낀 바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나눔의 집 관련 스님 한 분이 '이곳에 사회복지전문가가 없으니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고, 안 소장은 고심을 거듭했다. "당시 사회복지대학원(석사과정)을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논문학기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근무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었고, 머뭇하는 순간 아내가 힘을 불어넣어줬다"는 안 소장은 '여성인권을 다루는 의미있는 일이니 한번 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할머니들을 대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할머니들이 남성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알게 됐다. 기우라는 것을. 처음 할머니들을 뵙던 날, 아들같이 대해주시고 잘 따라주셨다. 남성중심문화의 시대에 자라셔서 일부 영향이 미쳤던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대해주셔 감동이었다. 더 잘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배가되는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안 소장은 본인이 사회복지분야에 이렇게까지 몸담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몇년 전에는 전문성을 더 갖추고자 박사까지 도전했다. 안 소장의 노력은 지난 2015년 2월, 결실을 맺게 돼 동국대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생애사 연구(인권과 복지권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사회복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생애사를 다룬 연구가 많지 않아(사회복지분야적 접근) 정리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힘을 보태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된 사과를 받아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정부는 일본과 '한일 위안부 합의'(2015.12.28)라는 것을 했고, 안 소장은 자괴감을 느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피해자 문제가 아니고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봐야 한다. 합의 과정에 당연히 할머니들이 참여하고 원하는 것들을 반영했어야 했다. 내용상, 절차상 문제가 있기에 당연히 폐기하고 (치유·화해)재단도 해체하고 10억엔도 돌려줘야 한다"며 "피해자가 살아 계실 때 원하는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 소장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방향은 확실하다. 이른바 이원화 전략.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고, 체계적 연구를 통해 자료 및 활동을 해온 전문성을 갖춘 민간에게 그 역할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는 예산을 빌미로 단체를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부터 광주 나눔의 집을 비롯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이른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당시 나눔의 집은 피해자 상의없이 잘못된 합의, 일본측의 진정한 사과가 없던 합의라고 반발했음)했던 단체들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여가부는 의도적 중단이 아닌 예산부족이 이유라고 설명하지만, 나눔의 집의 경우 연간 1천만원에 불과한 지원을 끊은데 대해 일부에서 보복성 중단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여가부의 '여성단체 공동협력 사업'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위안부 할머니 흉상을 제작해왔다. 2014년까지 모두 5개의 흉상을 제작했는데 지난해 지원이 끊긴후 2014~2016년 고인이 된 배춘희, 유희남 할머니 등 3분의 흉상 제작이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일부 지원은 끊겼지만 지난 2015년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이후 나눔의 집 후원자와 방문자는 50% 정도 늘었다. 일본 방문객이 늘어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한일합의안이 발표되고 몇 달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 귀향이 개봉되며 할머니들에 대한 공감대가 커져서인지 방문객은 물론 후원금의 경우 100% 넘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도 거론했다. "여러 후원자들이 계시지만 유명인들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유재석씨는 1억6천만원이나 기부했고, 김구라씨도 후원과 함께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유명인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안 소장은 "하지만 일부 네티즌이 이들을 색깔론으로 몰아가며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죄송스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개인들의 후원이 크게 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대기업 후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야쿠르트에서 매달 2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게 안 소장의 말이다. 나눔의 집은 현재 부지 뒤편에 유품전시관 및 추모관 공사가 한창이며 김화선 인권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도 계속 진행중이다. 나눔의 집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사이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사실 '나눔의집'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하는 의미가 커 브랜드 차원에서 관리라든가 하는 것을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보면 그게 아닌것 같다"는 안 소장은 "얼마전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다짜고짜 '요즘 나눔의집 운영이 그렇게 힘드냐'는 말과 함께 '이런 김치를 팔면 어떡하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알고보니 나눔의집 브랜드를 본딴 시설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오해를 빚게 되는 상황이 생겨났다"고 한다. 나눔의 집은 현재 10분의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계신다. 평균연령이 90세를 훌쩍 뛰어넘은 가운데 하수임(87) 할머니가 막내이고, 정복수(101) 할머니가 최고령이다. 안 소장의 중심은 언제나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 말씀을 들어보면 '그땐 위안부문제를 말하기도 쉽지 않았고, (당한 수모가) 인권침해인지도 몰랐다. 그저 타고난 운명이겠거니하고 운명 탓을 했다'고 하신다"며 "건강히 오래 사셔서 할머니들 살아 생전에 일본의 진정성 어린 사과를 받게 해드리고 싶다. 부디 그날까지 건강히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끝으로 이곳을 '아시아의 인권 허브'로 발돋움시켜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인권관련 증언을 위해 할머니들을 모시고 미국에 가보면 홀로코스트센터가 미국인들에게 역사나 인권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눔의 집에는 할머니들의 산 역사가 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아시아의 많은 이들에게 인권의 소중함과 역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장이 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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