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렁 시시렁 톱질이야/ 이 박을 타게 되면 아무것도 나오지 말고 밥 한 통만 나오거라.”
소리꾼이 흥부 가족의 박 타는 장면을 신명나게 부르자 300여명의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었다. 소리꾼은 가끔 물로 목을 축이며 3시간 동안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구성지게 ‘흥부가’를 불러 젖혔다.
지난 28일 전북 고창에 있는 동리국악당. 남정태(61) 명창은 이날 생애 첫 완창발표회를 가졌다.
남 명창은 굴곡 많았던 자신의 한평생을 흥부의 삶에 실어 표현했다. 관객들은 “잘한다” “좋다” “얼씨구” 등을 외치며 그의 열창에 화답했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남 명창의 인생은 두세 권의 책으로 엮기엔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정읍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고집스럽게 유학을 숭상하는 아버지의 철학에 따라 산골에서 머리를 땋고 한학과 예절만을 배우며 살았다. 스무 살 때 집을 떠나 군산에서 잡역부, 세탁부, 포장마차 등을 하며 지내면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박초월 명창의 제자인 최난수 선생을 찾아가 배우기를 청한 뒤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이후 주경야독을 통해 검정고시로 초·중·고등 과정을 모두 마친 뒤 서울대 국악과에 합격,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였다.
대학 졸업 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2000년 서울 중구청장 비서실장과 민주당 총무국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6년쯤 정치생활을 한 뒤 고향에 내려와 새롭게 연마했지요. 역시 나는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 명창은 스승인 최난수 선생을 다시 찾아 소리 공부에 정진했다. 지난해 서편제보성소리 축제에서 명창부 문화재청장상(2등)을 받는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지금은 ㈔한국판소리보존회 전북지회장을 맡아 후학을 기르고 있다.
“큰 공부라 생각하고 완창 준비를 했습니다. 부담이 컸지만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남 명창은 “판소리는 충효사상과 희로애락이 겸비된 종합예술”이라며 “더욱 매진해 판소리계 발전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