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 초입에 있는 ‘밀리미터 밀리그램(이하 mmmg)’ 경복궁 매장.
20대 초반의 대학생 한 명이 노트 한 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30분째다. 그까짓 노트 하나에 뭐 그리 유난을 떠나 싶지만 그는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자기 일상을 기록하는 소중한 매개체를 고르는 중이다. 그러니 자동차를 고를 때처럼 신중할밖에.
생활소품 브랜드 ‘mmmg’의 배수열(33·사진) 대표는 한낱 소모품 정도로 여겨지던 문구에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입힌 사람이다.
국민대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는 199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사업을 하려면 사업자 등록을 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직 쓰임새 있는 물건을 디자인하겠다는 의욕만으로 시작했다.
지금이야 문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지만, 초기엔 매장에 와서 노트를 던지고 간 사람도 있었다. “국산 노트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매장에서 100만 원짜리 옷을 사는 이들에게도 노트 한 권에 1만 원이 넘는다는 건 가당치 않았던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문구에 디자인을 입힌다는 발상은 화장실용 휴지에 꽃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쓸데없는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자동차나 가구뿐 아니라 밥숟가락, 노트처럼 사소한 것들도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2∼3평에 이르는 책상이었다. 20대 중·후반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사무실, 즉 책상 위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책상 위에서 쓰일 물건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고객들은 1mm, 1mg의 차이도 알아본다”는 뜻이다. 고객들은 그만큼 ‘디테일’을 가려내는 눈이 있는 것이다.
대학 후배 4명과 함께 500만 원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이 회사는 6년 만에 연간 매출액 24억 원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했다. ‘mmmg’ 설립 초기 때 거의 없던 디자이너 문구 브랜드는 현재 300여 개가 됐고 시장 규모도 500여억 원으로 커졌다.
문구의 실용성만 강조하던 시대는 끝났다. 젊은 층은 문구 하나를 고르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이 트렌드를 미리 본 것이다.
전은경 월간 ‘디자인’ 기자 lilith@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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