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재난방송의 보도준칙/손영준(언론학전공)교수

동일본 대지진 참화는 한국이 당사국이 아니긴 하지만 재난방송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다. 재난방송의 목적은 큰 재난이 발생했거나 예상될 때 방송이 국민에게 관련 정보를 긴급하게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구제역 파동이나 태안 기름유출 사고 등에서 보듯이 위기대처 여하에 따라 피해 규모와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 파동은 초기 대응 실패로 사태가 커진 경우이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계기였다. 방송은 속보성·광역성·현장성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재난방송은 재해의 사전 예방뿐 아니라 대응, 피해 복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재난방송의 대원칙은 신속·정확한 보도, 피해자 중심의 보도, 인권 보호가 핵심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방송 보도가 그 사실을 신속히, 그것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속보성(速報性)은 어느 정도 체제가 갖춰졌지만, 정확성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우선 사실관계에 대해 전문성을 결여한 보도가 적지않다. 이렇게 되면 사태에 대한 심층적·종합적 평가는 이뤄지지 못한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관련 보도에서도 이런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대규모 방사능 누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몇날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재난방송은 시청자의 두려움과 공포감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정반대로 고조시키고 있다. ‘감정의 과잉’ 보도는 여전하다.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은 모르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방송이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으며 그 사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작은 사건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는 침소봉대(針小棒大)도 적지 않다. 사고 지역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 일본의 서쪽은 또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동쪽 지역에도 어느 곳은 지나치게 차분한 상황으로 묘사되고, 어느 곳은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보도는 저널리즘의 ABC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재난방송에서는 더욱 중요한 원칙이다. 정확하지 않은 보도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재난방송은 또 재난으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 보도여야 한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제시해 어떻게 피해를 줄이고 복구할지에 관한 행동요령을 제시해 줘야 한다. 불안감과 공포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보도는 인권의식이 녹아 있다고 보기 어렵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방사능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한국의 시청자는 보도의 초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 보도에서 시청자는 뉴스의 소비자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 방송통신위원회 규칙 등에서 재난방송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은 미비하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는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돼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처럼 국가안보와 관련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 군사기밀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인지 대해 모호한 상태다. 큰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재난방송이 이뤄질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처럼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의 재난방송을 기대하기도 난망하다.

울리히 벡이 지적한 것처럼 현대는 ‘위험사회’다.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어렵다면, 위험과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한국의 방송계와 관계자가 머리를 맞대고 재난방송의 갈 길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031701033137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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