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축은행 부실을 둘러싸고 연일 터저 나오는 각종 뉴스들을 살펴보면 가히 모럴 해저드의 백과사전적 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이 4조 5000억대의 고객 예금을 빼돌렸으며, 분식회계를 통해 대주주와 경영진에게 수 백억원대의 연봉과 배당금을 챙겨주었고, 이를 감독하여야 하는 금감원 출신 감사들까지 불법에 적극 가담하거나 감시자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특히 영업정지 전 친인척과 VIP 고객의 예금을 일반고객 몰래 특혜 인출해 주었다는 소식에 이르러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 길이 없다. 이번 사태는 어느 한 군데의 부실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기 보다는 어느 한 군데도 제대로 된 모습을 찾을 길 없는 총체적 난국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19세기 이후 보험회사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처음에는 사기가 비도덕적 행위를 일컫는데 주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려지고 있다. 보험 사기와 같이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경우를 칭하는데 사용된 용어라는 것이다. 도덕적 행위를 이러한 용례로 사용하는 것에 한정한다면 이번 저축은행의 사태는 비도덕적 사기 행위로써의 도덕적 해이의 교과서적 사례라 할 만하다. 은행이 재무제표를 조작하여 수 년간 수 백억원대의 배당금을 대주주에게 지급한 것이나 조작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자기자본 비율을 부풀려 선량한 투자자들과 예금주들을 기만하여 후순위채를 안전한 자산인양 속여 판매하고 우량은행에 저축하는 것으로 믿게끔 만든 행위들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넘어 범죄이며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파렴치한 행위의 전형이다. 이러한 은행의 행태는 대주주와 경영진들이 소액투자자와 예금주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데 급급하였다는 점에서 일말의 도덕성과 윤리의식 마저도 결여된 자본주의의 타락한 모습, 천민자본주의 (Pariakapitalismus) 그대로 이다.
도덕적 해이는 그러나 비도덕적인 행위나 사기행각 만을 칭하는 용어는 아니다. 1960년 이후 경제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이후 도덕적 해이는 비대칭적 정보하에서의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성의 한가지 예로 인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자자를 대신하여 투자 대상을 선택하는 어느 편드매니저의 경우, 만일 고수익이 발생할수록 펀드매니저의 수입은 높아지고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 편드매니저는 극단적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고위험 자산에 투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과도한 위험에 투자자들을 노출시킴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행위는 비효율성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의 말을 빌면 의사결정의 주체와 그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뒷수습을 하는 주체가 다른 경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번 부산의 저축은행 사태는 비도적적 행위로써의 도덕적 해이 못지않게 타주체에게 자신의 의사결정의 부정적 결과를 전가시키는 행위로써의 도덕적 해이 역시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이 소액 예금주들의 피땀어린 예금을 투기적인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해 투자 수익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몫으로 챙기고 위험은 예금주들에게 전가시킨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사전특혜인출 사건은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순간에도 사고의 책임을 회피하며 승객들의 안위는 나몰라라하며 먼저 배를 버리는 파렴치한 선장의 모습이다.
이 와중에 부산지역의 의원들이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의 예금과 후순위채권 전액을 예금보험 기금으로 보상해주자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번 사태가 낳은 안타까운 사연이 어디 하나 둘 이겠는가만은 이를 위로해주기 위한 법개정은 이후 수많은 눈물겨운 사연을 또 다시 양산해 낼 것이 틀림없다. 예금보험은 은행을 파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과 선량한 예금주들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투자선택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사회로 돌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는 부정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금 운용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축은행으로 몰린 이유가 바로 높은 이자율과 예금보장한도이다. 높은 수익은 고위험을 동반하게 마련이지만 높은 예금보장한도는 이러한 위험을 투자자가 지지 않아도 되게 함으로써 수신고를 올리고 후순위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할 수 있게 한 주요 원인이다. 이제 만일 예금 전액을 보장하는 전례가 생기면 향후 투자자들은 예금 및 자금의 운영능력은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는 투자처를 찾아 나설 것이다. 지금은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자 노력할 때이지 이를 부축일 때가 아니다. 또한 이번 사태에 책임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과 더불어 감독 기능이 제기능을 다하도록 만전을 다하는 일이 재발을 방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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