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팔걸이 차지 경쟁/김도현(경영학전공)교수

열한 시간 반짜리 비행이었습니다. 이륙이 끝나고 막 잡지를 뒤적이기 시작하는데 왼팔에 신호가 왔습니다. 왼쪽에 앉은 분의 팔꿈치가 제 왼팔을 지긋이 밀고 있는 것이었지요. 팔을 팔걸이에서 내리라는 무언의 시위입니다.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열한 시간 동안 어깨를 움츠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버티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른쪽 팔걸이는 이륙 전부터 이미 오른쪽 분의 왼팔에게 점령되어 있었으니 더 밀려서는 안 될 터. 팔꿈치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땀이 나더군요.

제 저항에 놀란 그 분은, 그러나, 물러나는 대신 제 팔이 올려진 팔걸이에 베개를 올려놓고 자신의 팔을 그 위에 얹는 강공을 선택했습니다. 제 팔 위에 베개, 그 위엔 타인의 무거운 팔뚝. 이제 자존심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장거리 비행에는 비즈니스석을 타야 하는 거였는데'라고 속으로 푸념도 해보지만 사실 그건 너무 비싸지요.

비행기 안의 그 작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도 때로는 이렇게 힘겹고 간절하니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이전이나 신공항,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벌인 치열한 경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각자의 이익을 보지 말고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지역의 이익은 비교적 분명하게 산정할 수 있는 데 비해 국가 전체 이익은 그 종류나 크기에서 정의와 평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만일 어떤 지자체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서 유치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결과적으로 국가의 이익이 더 커지는 곳도 아닌 엉뚱한 곳에 사업이 유치돼 버릴 수도 있다는 점마저 감안하면 지자체들은 적극적으로 유치경쟁(혐오시설의 경우 거부운동)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국가이익의 추구는 앙상한 구호로만 남게 됩니다.

최근 지역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계획은 바로 이런 비극을 잘 보여줍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환경을 추구했던 계획은 지역 안배와 기존 연구기관들에 대한 배려,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의 기득권 인정 등 다양한 이해조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익 극대화의 원칙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정치학자이면서 지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재에 대해 오래 고민한 학자입니다. 공유재는 경합성과 비배제성이라는 특성을 함께 가진 묘한 재화입니다. 다시 말해 모두 나누려고 경쟁하지만 이용자의 수를 제한할 수는 없는 특성을 가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뒷산의 땔감용 나무나 바다의 물고기와 같은 것들은 남들이 다 가져가기 전에 서로 차지하려다가 결국 씨가 말라버릴 위험에 처하는 것이지요.

지자체들이 서로 사업을 나누어 가지려 하다가 결국 국가의 이익이 사라져버리는 상황과 꽤 비슷합니다. 오스트롬은 정부와 같은 공공 부문의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궁극적인 해결책은 이해관계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제정하고 상호 신뢰하에 그 규칙을 지켜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나치게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만 점점 복잡해지는 지역 간의 이해관계 대립을 정부가 전부 다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어렵지만 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옆 사람의 팔꿈치를 버티던 저는 결국 팔을 스르르 팔걸이에서 내렸습니다. 잠시 팔걸이 독차지의 쾌감을 만끽하던 옆 사람도 잠시 후 팔을 내리더군요. 그리고 나머지 십여 시간 동안 저와 옆 사람은 필요하면 잠깐씩 팔걸이에 팔을 잠깐씩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잘 지냈습니다. 묘한 친근감마저 느껴지더군요. 말을 섞은 적도 없으면서요.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51911133796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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