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겨레]이렇게 가시나요! - 이소선 어머니를 보내며/이광택(공법학전공) 교수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세요.”

“어떤 물질이나 어떤 유혹에도 타협하지 마세요. 내가 부탁한 거 꼭 들어주실거죠?”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네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스물두살의 청년 전태일이 불꽃 속에서 죽어갈 때 마흔한살의 어머니는 피눈물로 약속하셨지요. 그리고 아들과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4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헌신하신 어머니. 이제 그 짐을 내려 놓으시렵니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산화해간 전태일과 동갑내기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제가 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았을 때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났느냐”고 하셨지요? 청계천과 제가 다닌 대학이 지척에 있었음에도 태일이가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걸 알지 못했던 저희들이었지요.

죽음을 앞둔 태일이가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 돼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 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라며 제시한 운동방향은 우리 사회의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어머니는 이 땅의 소외되고 천대받는 노동자들의 영원한 어머니십니다.

어머니는 이 땅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신 거목이십니다.

어머니는 불의에 맞선 싸움에서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장수이십니다.

어머니는 자본과 권위주의 정치권력에 의해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20년 이상 탄압을 받아 네 차례나 옥고를 치르셨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과의 약속, 그 짐을 내려놓으시기 전에 용의주도하게도 이 땅의 노동운동의 두 지도자로부터 새로운 약속을 받아내셨습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어머니의 평소 소원에 따라 “양대 노총의 공동투쟁을 다짐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병실을 찾았고, 양 노총 위원장들로서는 그 자리가 임종의 자리가 됐습니다. 어머니는 “양대 노총이 하나가 돼야 해요. 왜 쪼개지느냐고. 내가 죽기 전 양대 노총이 같이하는 날이 올까요?”라고 하셨고 양 노총의 위원장들은 어머니 앞에서 역사적인 약속을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타계 소식에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추모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염원대로 국민적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지요.

어머니의 마지막 소망은 240여일째 계속되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 네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 캠페인 그리고 국회 청문회에서 제기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의 해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난과 불평등이 없는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꿈꾸셨지요.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태일이 곁에서 평안히 영면하소서.

이광택/ 국민대 교수,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4950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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