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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현대건설 매각, 모두가 승자되는 법/유지수(경영학) 교수

유지수 / 국민대 교수·경영학

2010 경인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 연말을 후끈 달궜던 현대건설 매각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현대그룹이 제기한 양해각서(MOU) 효력유지 가처분 신청 심리에서 법원은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권단을 비난하는 듯한 이례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이번 매각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음을 재판부도 공감하는 듯하다. 당초 채권단이 원칙과 기본에 충실했다면 이 같은 혼란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접어두자.

시세보다 2배의 프리미엄이 붙은 현대그룹의 응찰가 앞에 무력했던 채권단의 책임을, 매각에 관계된 주체들의 허물을 이제 와서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그보다는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새롭게 체득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새해를 앞둔 지금 중요하다.

현대건설 매각이 혼란에 빠진 원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태동한 새로운 환경의 엄정한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금융시장에서는 실체 없는 경제공학 기법을 지렛대 삼아 기업매물을 사들이는 인수·합병(M&A)이 각광을 받았고, 그 결과 세계 경제에 짙고도 냉혹한 그늘을 남겼다. 통렬한 반성이 뒤따랐고 미국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도 기업윤리 과목이 다시 추가되고 있다.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은행장회의에서 파생상품 규제를 결의한 것도 법의 허점을 교묘히 활용하는 행태를 제어하자는 취지다.

현대건설 매각 논법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외면했다. 도도한 글로벌 흐름을 도외시한 채 과거의 틀에서 이뤄졌다. 뒤늦게 우려가 제기됐고 언론과 시장의 질타가 거셌으며, 결국 법원의 손에 최종 판단이 맡겨졌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단연 현대건설이다. 매각 절차가 지연될수록 성장의 기회손실을 보게 된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또한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현대건설 인수라는 이슈에 관심이 분산되고 있다. 채권단의 일원인 정책금융공사는 본연의 정책금융에 써야 할 자금의 회수가 늦어지고 있고, 외환은행 또한 현대건설 매각이 지연될수록 하나금융지주로의 지분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등 손실이 커지는 상황이다. 다른 채권 금융기관들도 이번 매각의 지연으로 투자자금 회수가 늦어져 손실을 보고 있다.

현대건설의 운명을 뛰어넘어 한국 경제가 종국에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은 분명하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국제조류에 부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알맞은 M&A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매각 차익 극대화와 승자의 저주 차단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회생기업 매각 목적을 살리는 매각 기준과 평가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M&A 룰과 원칙을 정립한다면 현 상황은 한국 경제에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대한통운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규모 회생기업의 매각 또한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현대건설 매각 논란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의 여부는 향후 국민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대형 M&A 이슈들의 처리 능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주요 외신이 관심있게 이 사안을 지켜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대그룹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그래서 중요하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 누가 문제가 있느냐의 차원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법원의 결정이 M&A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23001033437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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