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무상의료 논쟁 사회성숙의 방증/김도현(경영학전공)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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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이방인이 되곤 합니다. 전학을 가거나 직장을 옮기게 된 첫날, 잠깐이나마 그런 기분을 피할 수 없지요. 그런 날 누가 밥 함께 먹어주면 참 고맙습니다. 이방인 체험의 결정판은 아마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말도 잘 못하고 어수룩한 사람으로 격하(?)돼 보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될 수 있게 됩니다. 영국에서 그런 이방인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느려터진 영국에서 우리 교민들에게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NHS라고 불리는 무상 의료체계였습니다. 꼭 예약해서 가야 하고, 독감에 걸려서 주사 한대 시원하게 맞고 싶어 찾아가면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라는 말이 고작인,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영 마뜩잖은 의사들을 만나야 했으니 말입니다. NHS 는 사실 영국의 모든 언론으로부터도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고 있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환자대비 전문의가 부족해서 생명을 다투지 않는 수술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4년간 기다리느라 지쳤다, 돈 내도 좋으니 내 병 빨리 고쳐주면 좋겠다는 식의 내용이 가장 많았는데 심지어 NHS가 돈 아끼려고 환자들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거라는 소문마저 있었지요. 비싼 유료병원도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침 일요일, 기침이 갑자기 심해진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미덥잖은 의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예약 없이 간 탓에 세 시간쯤 기다려 만난 의사는 (또 물이나 많이 마시라고 하면 화를 한번 낼 참이었는데) 갑자기 정색을 하고 당장 구급차를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폐렴으로 진행돼서 곧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 다음 병원에서 일어난 일들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보증인을 세우는 입원수속 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병원에 수납창구 자체가 없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이 장난감을 들고 나타났으며, 퇴원할 때는 택시 타고 가라고 택시비를 주는 따위의 신기한 경험들. 그 다음부터 저는 더 이상 NHS를 비판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방인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이 제 마음에 깊이 기억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무상의료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무상의료에 우려가 큽니다. 급식이나 교육과 달리 의료서비스는 가격 탄력성이 있고 따라서 무상의료가 수요를 크게 늘릴 가능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논의되는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사실 피부로 당장 와 닿지는 않지만 만약 영국에서처럼 사소한 관절수술을 하나 하려면 3~4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상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그런데 NHS의 서비스를 입만 열면 욕하는 영국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왜 내 세금 걷어서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들에게 서비스를 해 주는데?"라고 묻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습니다. 꽤 '쿨'한 모습이었습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서 누군가가 굶주리고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 역시 염치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래서 무상의료 논의가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재원과 실현가능성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인 계산이 이뤄지고, 그 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기심이 아니라 따뜻한 공동체 의식이 그 논의에 함께 담길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때로 이방인이기 때문에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1201114064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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