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 책은 사람을 만든다/김대환(관현악전공) 교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뿌린 화제의 하나는 주인공 김주원(현빈 역)의 서재이다. 인터넷 검색과 전자책이 유행하는 시대에 거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은 종이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유리창 밖의 자연을 보며 의자에 기대 앉아 책 한 권 읽고 싶기도 했고, 낙엽을 주워 책 갈피에 끼워 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김주원이 읽는 책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드라마의 테마가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1만부나 팔렸고, 시집을 포함해 책장 속의 책을 모아 만든 테마 세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처럼 인기 드라마의 원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드라마 속 책장에 꽂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가 증가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한 TV 드라마가 책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작년에는 정치인들이 인문학 열기에 힘을 보탰다. 박근혜 전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이 읽었다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손학규 대표가 언급한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그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의’와 ‘공감’을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 덕에 많은 이들이 쉽게 읽히지 않는 인문학 책들을 접했다. 특히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관심은 EBS의 하버드 특강으로 이어져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밤 늦게 방영되는 인문학 강의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샌델의 명성을 입증함과 동시에 경제성과 속도만 강조된 현대인들에게 순수 인문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을 나타낸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좋아했던 베토벤은 젊을 때 그의 시 몇 구절을 이용해 작곡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음악도 실러의 시를 넘을 수 없다며 작품에 사용하기를 망설였다. 말년에야 인류애를 담은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Ode to Joy)>를 사용하여 대작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베토벤은 자신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음악에서 자유주의와 이상주의가 느껴지는 것은 젊은 시절 수 많은 계몽주의 서적을 읽은 때문일 것이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이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것은 전통을 고수한 작곡 기법뿐 아니라 사색의 깊이가 베토벤을 닮은 때문이다. 베토벤처럼 독서와 산책이 평생의 취미였던 브람스는 생계 유지로 힘들었던 젊은 시절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돈을 벌던 시절에도 악보 대신 책을 펴놓고 연주할 정도였다. 바쁠 때에도 틈을 내 산책하며 사색에 잠긴 브람스였기에 그의 음악에는 삶의 철학이 배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읽어야 하는 참고서가 책장에 꽉 찬 학생들에게 독서와 사색을 이야기하고, 독서조차 논술 준비의 도구인 그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논하는 것은 가혹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도 집에 오면 책보다 TV 리모컨에 손이 가는 것을 바쁜 일상 탓으로 돌리고 싶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책 속에서 넓은 세상을 만나고 지혜를 얻으며 사색의 기회를 갖게 된다. 문득 내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둘러본다. 지난 가을 교보생명의 광화문 글판이 떠올라서이다.“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의 명언을 변용한 글귀이다.

그 교보생명과 교보문고의 창립자 대산(大山) 신용호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을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101/h20110121113343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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