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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소련이 '달러'를 찍어냈다면/이상준(러시아학전공) 교수

소련이 붕괴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중심 국가였던 소련이 루블을 마구 찍어내었다면 소련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소련이 만든 사회주의 국제협력 시스템은 미국이 만든 자본주의 국제협력 시스템과 달랐으며 소련의 루블은 미국의 달러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만들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련은 붕괴한 것이다.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체결된 국제통화체제에 다른 전승국과 마찬가지로 소련도 초대받았다. 그러나 소련은 브레튼우즈 체제에 소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이유는 전후처리방식에서 미국과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의하여 국가가 붕괴될 위기까지 몰렸던 소련은 다른 국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완충 국가를 만들기를 원하였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소련과 적대적인 국가가 들어선다면 소련의 안보는 크게 위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마셜 플랜과 나토를 양축으로 경제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며 서유럽과 파트너십을 강화한 것과 달리 소련은 동유럽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통한 직접적인 통제를 선택하였다. 물론 소련도 사회주의 국가 간 국제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1949년 경제상호지원기구(CMEA)를 창설하였다.

CMEA 회원국들은 이전 가능한 루블을 국제결제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고정 환율로 자국의 화폐를 이전 가능한 루블로 변환하여 국제무역을 하였다. 이전 가능한 루블은 국가 간 대차계정의 단위로서 사회주의 국가들 간 무역흑자와 무역적자를 측정하는데 사용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여기까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형성할 당시 케인스가 제안한 국제청산동맹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의 국제청산동맹과 달리 CMEA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기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소련은 CMEA를 자신의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는데 무역수지 청산은 늘 쌍무적인 협상에 의하여 해결되었다. 소련은 주변국들을 경제적 파트너로 성장시키는 것보다는 자국의 안보를 우선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완충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CMEA 회원국과 무역적자와 무역흑자가 누적되어 더 이상 교역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당사국과 정상회담을 통하여 부채 탕감 혹은 원조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였고 이를 통하여 사회주의 국제 협력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서 대외무역이 주는 긴장감이 사라지게 되었다.

소련은 대외무역을 물자수급계획의 일부로서 국내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최소화하였다. 1988년 소련의 GN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지 1.6%에 불과하였다. 다른 회원국들도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 간 산업구조는 유사해지고 경제교류에서 오는 이득이 기대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에 대등한 경제적 파트너로 성장하는데 실패하였다.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자국의 명칭에 지명과 민족명을 포기한 소련이 스스로의 권력을 버리지 못하고 초국가적인 중앙은행과 국제 협력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이 루블을 마구 찍어내었다고 한들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소련은 혁명이후 일국사회주의를 만들어내면서 공황기에 높은 성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과 서유럽을 추격하여 대등한 지위까지 확보하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 간 협력체제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1950년대 말부터 이미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전조는 나타났었다. 소련은 1970년대 오일쇼크 덕분에 늘어난 달러로 한때 체제의 문제점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가하락이 시작된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이 더 잘 표출되었다.

소련이 붕괴된 지 정확하게 20년이 되는 시점에 소련의 법적 승계자인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였다. 냉전의 잔재에서 러시아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론되는 국제통화˙금융체제와 국제 무역체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다시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원문보기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122511311481960&outlink=1

출처 : 머니투데이 기사입력 2011.12.2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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