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일보] 내 브로치 모조품이 ‘남대문 티파니’로 통한대요, 기분 나쁘진 않네요/김승희(금속공예학과) 명예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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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m짜리 대형 금속 공예가로 유명하다. 세간에 그의 명성이 더 높아진 건 ‘김승희 브로치’를 통해서다. “눈 밝은 사모님들 사이에선 ‘김승희 브로치’ 하나쯤 있어야 ‘안목 있다’는 말을 듣는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연장을 든 ‘현역 작가’였다. “공예를 더 젊은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에게 ‘한국적 산수를 품은 브로치’ 얘길 들었다. 김승희 작가의 작품이 입소문이 난 건 1980년대부터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연마하고 돌아온 몇년 뒤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 교수로, 생활 공예 제작자로 사는 건 쉽지 않았다. “주문은 밀려들고 작업은 많아졌죠. 그래서 아예 은기 공방을 차렸어요.” 생활 공예로 상업화에 성공했지만 그는 여전히 순수 예술가임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87년 ‘하염없는 생각’이란 주제로 작품전을 연 그는 “그릇을 하도 만들다 보니 ‘밑 빠진 그릇’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실제 이 전시에서 선뵌 것은 단지 모양을 한 브로치였다. 진짜 단지라면 밑이 막혀 있었겠지만 그는 액세서리 브로치를 밑 빠진 단지 모양으로 제작했다. “은기도, 금속 공예 작품도 실제로 전시를 구경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소수였죠. 전시 공간도 몇 없었고요. 은기 고객들이 이 브로치를 알아보고 하나 둘씩 주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유행이 시작되자 남대문 액세서리 상가에선 제 작품을 그대로 베낀 게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요. 제 작품이 ‘남대문의 티파니’라고 불린다니까요. 요즘 작품들도 여전히 복제한 제품이 많이 팔린다고 하대요.” 그의 작품이 은으로 돼 있다면 남대문 버전은 주석이나 도금으로 돼 있다. 가격은 100분의 1 수준이다. “모조품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다른 걸요. 그리고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지 몰라요. 인기 있다니까 뭐. 하하." 은을 연마해 예술적으로 변신한 브로치는 이후 오닉스, 호박 등 귀금속 소재 브로치로도 발전했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씨는 김 작가의 브로치를 두고 “시적이고 풍경적인 조각으로 금속 조형을 해 왔던 작가의 ‘미니어처 조각’”이라고 표현했다. 마치 한 점의 작은 동양화가 그려진 듯한 그의 브로치에 대한 평이다. 김 작가는 “평론가들이 ‘내 가슴에 꽂는 산수’라고 표현하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산과 자연을 소재로 삼았던 조각 작품이 브로치란 영역으로까지 넓어진 거니까요. 가슴 한 켠에 달려 있는 자연, 우리 산수라는 표현이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끝으로 그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아이디어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준비 중”이라고 했지만 벌써 그의 작업실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엔 신진 금속 공예가들을 위한 무료 공방이 마련돼 있다. 그곳에는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닦아가려는 신진 작가들과, 이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김승희 공방 장인들의 뜨거운 열정이 가득했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1/04/9941856.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3.01.04 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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