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외정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대외정책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은 부동항 획득 등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고 만주와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21세기 차르(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의 군주)’로 불리는 푸틴은 이제 ‘신동방정책’을 통해 동북아를 포함한 아태 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푸틴이 사활 건 亞太 강화계획
신동방정책의 기본 골격은 대선 기간이던 2012년 2월 ‘러시아와 변화하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일간지에 게재된 푸틴의 기고문과, 5월에 발표된 ‘대외정책 실행 조치에 관한 행정명령’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문건들에서 러시아 연방정부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 국가를 포함한 아태 지역 국가와의 경제 및 외교적 협력을 심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최근 들어 러시아가 동아시아와 아태 지역 국가와의 협력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중국의 급부상으로 보듯 세계의 중심이 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글로벌 강대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떠오르는 아태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가 진정한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 개발이 필수조건이고, 이를 위해 아태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푸틴 대통령은 집권 3기 취임 직후에 ‘극동개발부’라는 새 정부 부처까지 설치했다. 셋째,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로서는 동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으로 생산지를 확대하고 동북아 및 아태 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2012년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APEC 회의에서 식량안보 등 굵직한 의제를 주도함으로써 아태 지역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한편 이 무렵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방의 수도로 격상시켜 아태 지역 국가와의 협력을 위한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됐다. 신동방정책은 러시아의 미래가 걸린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정책에 대해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벌써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제18대 대선 공약집에서 대러 협력 방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우리도 대러 정책을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우선 2010년부터 이슈가 돼 온 남-북-러 가스관 사업 및 한반도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사업, 농업 협력 등에 대해 러시아와 협상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안보-외교 지렛대 삼아야
물론 이러한 프로젝트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역으로 남-북-러 3각 협력의 추진 노력이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러시아의 광활한 농지에 한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하는 방식의 농업협력은 각 당사국의 이익은 물론이고 상호 신뢰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더욱이 한국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편승해 대러 경제 및 외교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북한 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을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중 경쟁구도의 틈 속에서 아태 지역 내 다자협력체 구축에 관심을 두고 있는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면 글로벌 이슈와 지역 협력 분야에서 중견 국가 한국의 역할 공간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30115/52315395/1
출처 : 동아일보 기사보도 2013.0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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