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1948년 런던올림픽의 재구성’ 추진 이대택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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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이대택 교수가 진외종조부(할머니의 오빠)인 이원순 선생이 1948년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 고문으로 출전했을 당시 단복에 부착했던 태극마크를 담은 대형 화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왼쪽 사진). 1948년 런던 올림픽 사이클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황산웅 선생의 유니폼. 가슴 한가운데 ‘KOREA’와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황 선생은 사이클이 하고 싶어 1946년 홀로 월남해 올림픽 무대에 섰지만 그 후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오른쪽 사진).
‘64년 전 영광의 기록’은 희미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7월 29일∼8월 14일)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사료는 거의 없었다. 그 당시 런던 대회 페이지에는 한국 선수단이 선수 45명 등 총 75명이 출전한 것으로 돼 있다. 동아일보 등 언론은 66∼69명이 출전했다고 보도했다. 출국하는 과정에서 후보 선수가 빠졌거나 여권 문제로 중도에 돌아온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대택 국민대 교수(체육학·스포츠문화연구소장)는 2012년 런던 올림픽(7월 27일∼8월 12일)을 앞두고 64년 전 런던 대회의 재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 자료가 전무하다. 이제부터라도 사료 수집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 진외종조부를 추억하다 이 교수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주목한 건 2년 전. 당시 한국 선수단 고문을 맡았던 그의 진외종조부(할머니의 오빠) 이원순 선생(1890∼1993)의 1948년 단복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면서부터다. 이 선생은 재미교포 출신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김구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 그는 1947년 6월 15일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한국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시키는 데 힘을 실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역도 미들급에서, 복싱 한수안(별세)이 플라이급에서 각각 동메달을 목에 걸며 59개 출전국 가운데 공동 32위에 올랐다. 그러나 첫 국제대회에 출전한 한국은 언어 장벽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는 3명에 불과했다. 이 선생은 통역과 섭외를 맡으며 한국을 알렸다. ○ 여권에 남은 고단한 과정 이대택 교수는 런던 대회에 사이클 선수로 출전했던 황산웅 선생(1925∼2012)의 여권을 통해 당시의 힘들었던 여정을 찾아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인 황 선생은 1946년 런던 올림픽 사이클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 단신으로 월남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가 런던 대회 당시 입었던 ‘KOREA’라고 적힌 체육복 상하의는 등록문화재 심사를 받고 있다. 황 선생의 여권에 따르면 런던으로 출국하는 고단한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48년 6월 22일 부산을 출발해 7월 2일 홍콩에 도착했다. 4일 태국 방콕,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를 거쳐 캘커타(현 콜카타·5일), 이탈리아 로마(7일)를 경유해 8일 런던에 입국했다. 돌아오는 길도 멀고 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월 13일 런던을 출발해 네덜란드∼파리∼로마∼캘커타∼홍콩을 경유한 뒤 28일 귀국했다. 비행기로 약 11시간이면 인천에서 런던까지를 주파하는 요즘과 극과 극이었다. 당시에는 장티푸스, 파상풍, 콜레라, 페스트 등 예방접종을 받기도 했다. 이대택 교수는 한국 선수단의 이색 기록도 찾아냈다. 마라톤의 최윤칠은 10km까지 8위(35분15초)에 머물렀지만 30km 지점에서 3위(1시간47분53초), 35km 지점에선 1위(3시간6분2초)에 올랐다. 그러나 40km까지 선두를 질주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탈수증으로 경기를 포기했다. 복싱 한수안이 플라이급 3, 4위전에서 마드록(체코)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을 때 현지 언론은 “빠른 발을 이용한 아웃복싱의 승리”라고 평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선 “작은 체구에 짧은 패스를 구사한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1948년 런던 대회를 추가로 조사하기 위해 이달 말 국민대 성곡 글로벌 앰배서더의 지원을 받아 국민대 학생 5명과 현지를 방문한다. 그는 “런던 도서관, 언론사 등을 방문해 64년 전 한국의 소중한 기록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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