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 기업집단 규제, 失業문제 더 키운다 / 유지수 총장

우리나라 경제 역사상 지금처럼 기업진단에 대해 비판이 쏟아진 적도 없을 것이다. 여야(與野)를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기업집단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경제는 높은 실업률, 빈부(貧富)의 격차, 중소기업의 열악함 등 많은 문제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제 문제가 사회정의의 부재에서 출발하며, 기업집단이 대표적으로 사회정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집단은 이제 정치권의 마녀사냥 대상이 됐다. 이들은 기업집단을 규제하면 경제 문제도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국민은 그 주장이 진실인지 혼란스럽지만, 잘나가는 기업집단을 곤경에 내모는 것에 대해 내심 속시원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정치의 희생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정치는 감성일지 몰라도 경제는 이성이다. 냉철한 경쟁논리에 의해 경제가 살고 죽는다. 적어도 기업집단을 보는 눈은 냉철한 머리에서 나와야 한다. 기업집단을 해체하면 실업률과 빈부 격차가 모두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경제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이런 단순논리에 기반을 둔 정책이 실패한 것을 알고 있다. 좋은 예가 조명산업이다. 조명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막으면 중소기업이 살 것이라고 생각해 대기업 진출을 규제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국내 대기업 규제의 최대 수혜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조명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실패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기업집단을 와해시키기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거나 (가공)의결권을 제한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연결고리가 끊어진 한국 기업은 외국계 투자 기업에는 좋은 사냥감이 될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자동차나 전자산업은 외국인들의 주타깃이 될 것이다. 자동차와 전자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중국에는 특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걸려도 개발할 수 없는 기술을 단번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또 오너가 불분명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인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도 상실될 것이다. 정치권의 기업집단 규제는 조명산업처럼 결국 외국계 기업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경우 투자 위축과 실업률 증가 같은 경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리의 생각도 좀 더 냉철해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시장은 한국 기업의 디자인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시의회를 설득해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대형 건물을 한국 기업이 매수하도록 했다고 한다. 고용 창출을 위해 시장이 발벗고 뛰어 얻어낸 성과다. 미국의 몽고메리 주지사도 주법(州法)을 개정하면서까지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특혜 의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규정을 방패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행정의 현주소다. 투자를 저해하고 고용창출을 가로막는 법과 규정을 왜 안 바꾸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기업의 의욕을 살려야 한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집단이 투자증대, 고용창출, 소비 활성화의 선순환에 시동을 걸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불황의 늪 앞에 서 있는 지금은 정치권이 매를 들 게 아니라 당근으로 투자를 유도해야 할 때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0601033137191005

출처 : 문화일보 기사보도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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