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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에 낀 한국 외교, 고려의 실리외교를 배워라 / 박종기(국사학과) 교수

고려사의 재발견 저자 박종기(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책의 머리말 '지금 이 순간, 고려사를 다시 읽어야 할 때'에서 "고려왕조의 역사는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이자 역사적 사고와 상상력의 자산"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고려왕조는 문화와 사상 면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이, 정치와 사회에서 개방성과 역동성이 공존한 다원사회였다. 우리 사회가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고려 다원사회의 역사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시점에서 고려왕조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고려인, 고려 문화, 고려를 뒤흔든 수많은 사건을 통해 고려왕조의 내면과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단편적인 역사 지식으로 접해온 고려사의 잘못된 상식을 뒤집고 제대로 된 고려 역사에 대한 시각을 제공한다.

크게 7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 요즘 국제정세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제4부 '영토분쟁, 고려의 실리 외교로 맞서다' 부분. 고려는 서희의 담판 결과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넘겨받지만, 뒤늦게 이것이 패착임을 깨달은 거란은 반환을 요구하면서 고려에 침입해 압록강 동쪽 요충지 보주(의주)를 점령한다. 이어 고려가 보주의 영유권을 끝내 되찾는 '100년간의 영토분쟁'은 고려왕조의 등거리 실리 외교정책의 백미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중국 송(宋)과 거란 사이, 여진족이 세운 금(金)과의 국제정세를 이용한 고려의 능란한 줄타기 외교가 돋보인다.

993년(성종 12년) 거란의 제1차 침입, 1010년(현종 1년) 거란의 제2차 침입, 1019년(현종 10년) 강감찬의 귀주대첩 등 영토전쟁이 진행되는 사이 고려는 군사력과 외교력을 함께 구사하면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송나라와의 관계를 지렛대로 거란을 견제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송과 외교관계를 단절해 실리를 챙겼다. 군사적으로 유리한 국면에서는 전면전에 나서 거란을 물리쳤다. 국익을 위해 강경·유화노선을 적절하게 구사한 것은 물론이다.

마침내 1117년(예종 12년) 금나라의 공격에 쫓긴 거란이 보주에서 철수하자 고려는 보주를 영토로 편입하고 이름도 의주로 바꾼다. 이는 당시 급변하던 대륙 정세를 잘 활용한 결과였다. 고려를 우군으로 삼아 고려-거란 연합을 막으려는 금나라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낸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고려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질서의 명언을 역사에서 실천한 왕조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얼마 전 미국 의회에서 합동연설을 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미국을 상대로 일본이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한국은 미국을 '영원한 우방'으로 여기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G2'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은 주도적으로 실리 외교를 펼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1000여 년 전 나라를 세워 500년간 지속한 고려왕조의 역사는 지금의 우리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원문보기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50523.2201219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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