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탈북자 엘리트 양성은 미래 위한 투자 / (교양대학) 교수

동유럽 공산체제 타도-개혁에 정권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
대안 엘리트로 커다란 기여
감시 심한 북한에선 지식인들 세력화 힘들어
엘리트 교육 받은 탈북자들 통일과정선 北사회 변화시키고
통일후엔 北복구 큰 역할할 것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396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도착했다. 1953년 휴전 이후 2014년 12월 말까지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7518명에 이른 만큼 남한사회에서도 탈북자들은 무시하기 힘든 세력이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탈북자가 남한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술과 지식이 모자라 미숙련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이 130만 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사회적 약자’로 대접받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탈북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는 대신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세력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관점이다. 북한에서의 사회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북한 엘리트가 싹트는 온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유럽 민주화의 역사가 보여주듯 민주화 추진세력 가운데 공산정권에 비판적 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이들은 대부분 공산당 정권에 직접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전문직이나 개인생활에 집중했지만 정권의 거짓선전과 비합리주의적 경제체제에 비판의식을 가졌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방법에 대한 토론이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이들은 공산당 간부들과 다른 ‘제2 엘리트’ ‘대안 엘리트’의 역할을 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체제를 타도하고 민주화와 개혁을 주도한 주요 인물 가운데 이 계층 출신이 상당히 많았다.

유감스럽게도 동유럽보다 감시가 훨씬 엄중한 북한에선 이런 ‘대안 엘리트’ 계층이 있을 수가 없다. 체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이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으니 서로 믿을 수도 없고 수평적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쇄국정책 때문에 북한 지식인들은 현대사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북한체제가 붕괴되더라도 합리주의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실시할 수 있는 세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복구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갖춘 사람도 북녘 땅에서 구하기 힘들 것이다. 인재와 현대지식의 부족은 북한 변화의 길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두 가지 전략이 가능하다. 북한과의 교육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북한 학생들의 유학을 후원하고 북한 대학교에 컴퓨터, 연구시설, 도서 등을 지원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탈북자들을 새로운 북한을 주도할 인재로 키우고 활용하는 길이 있다.

탈북자들을 살펴보면 시골 출신 중년 여성이 많지만 유능한 청년들도 없지는 않다. 현재 탈북자들은 남한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70%나 되는 남한에서 대학만 졸업한다고 엘리트 인재가 되지는 않는다. 대학원 공부나 대기업 인턴 경험, 그리고 외국어 능력이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능력이 출중한 탈북자들도 이런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각종 지원이나 교육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탈북자라고 해서 누구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학원 장학금 지원이든 대기업 인턴 프로그램이든 능력이 뛰어난 탈북자를 뽑아야 한다. 이 경우 그 대상은 최소 몇십 명에서 최대 몇백 명이 될 테니 한국 납세자들에게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투입 대비 수익은 매우 높은 투자라 할 수 있다.

통일 과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탈북자들은 북한 복구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들은 현대경제와 기술뿐만 아니라 북한의 특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육자와 중개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덕분에 북한의 과도기는 보다 수월하게 끝날 수 있다.

남북 분단이 지속된다고 해도 엘리트 탈북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의 휴대전화와 브로커를 통해 오가는 편지 덕분에 탈북자들은 북의 가족과 친구들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보이지 않게 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바깥 사회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수도 있다. 함경북도 주민이 서울로 간 조카한테서 전해 듣는 이야기야말로 그 어떤 방송이나 소문보다 미덥지 않을까? 탈북자 교육과 탈북자 인재 양성은 한반도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정부나 뜻있는 개인들이 나서야 한다.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50227/698349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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