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기고]비주얼도, 의미도 못 잡은 인사동 맨홀 디자인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시가 최근 맨홀 덮개를 바꾼다고 공표했다. 각 지역의 맨홀에 역사, 이야기, 특성 등을 가미해 지역 정체성까지 표현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인사동이 첫 번째 지역으로 선정됐고, 시민 공모 작품 105개 중 최우수 작품으로 ‘매듭’이 선정되었다. 선정 이유는 “두 동네가 합쳐져 인사동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세계와 한국을 이어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연결과 맺어짐’이라는 의미를 매듭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인사동의 정체성과 전통 매듭, 언뜻 잘 어울리는 발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디자인에 대해 “이상하다”는 반응이 무성히 떠다닌다. 왜 그럴까? 디자인은 의미 부여로 완성되는 추상물이 아닌, 매일 생활에서 마주치는 감각체이자 상징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결과물은 모양, 색채, 재료의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예쁘다” “멋있다” “기발하다” 등의 반응을 일으킨다. 매듭은 그 자체가 완결된 하나의 오브제이며 대부분 어떤 것의 마지막 매무새를 장식한다. 

한 예로 한복을 차려입고 호사스러운 호박 혹은 청연한 옥 장신구의 매듭을 매는 순간 그것은 화사한 한복의 맵시를 완성하면서 자신의 물격을 달성한다. 작지만 이런 풍요로운 전통물의 머리 부분만 그것도 무겁고 강한 철강에 새겨 넣으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감성적 반응일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매듭의 촘촘한 격자, 기하학적인 정확함, 칼로 자른 듯한 대칭성, 똑같은 간격의 작은 매듭 배열 등이 시대에 뒤떨어진 근대 기하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같은 기하학적 패턴이라도 명주실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감각과 강철의 딱딱함의 차이를 보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식의 박제화된 전통 사용법은 30여년 전에 세워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도 서초동 고개를 넘다보면 거대하게 떠오르는 이 갓 모양의 키치적 건물은 웃음을 준다. 가볍디 가벼운 말총으로 만들어진 조선 선비의 날렵한 갓을 울트라 슈퍼 사이즈의 육중한 돌덩이로 만든 그 방법론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 형국이다.

시각적인 문제와 더불어 정체성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다. 매듭이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일까? 아니다. 과도하게 집착한 이 목적도 실패일 확률이 큰 것은 이런 매듭은 중국에서도 숱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명절이면 붉은색의 마름모꼴 매듭을 여기저기 매단다. 술과 함께 하늘 높이 휘날리는 이 거대한 장식물은 이미 중국의 시각적 정체성 중 하나다. 한국의 매듭은 한국 비단실의 촉감과 색상, 그것과 조합되는 다정한 장신구들의 서정으로 차별성을 지니는 것이지, 단지 매듭 패턴만으로는 한국적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다.

한국인에게 전통은 외세에 의해 강제로 추방된 억눌린 존재이기에 오히려 공공 디자인에서 대의적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좀 과한 비유이지만,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타인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에 기대어 공모작들을 심의한 디자인 전문가에게 묻고 싶다. 

자기 집의 철대문이나 아파트 현관에 이 매듭 형상을 새겨 놓고 싶은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의미와 이름의 내력에 의해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이 디자인은 현재 우리의 미감이나 의미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럴듯한 수사와 말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한국의 현재 디자인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바뀌게 될 맨홀 덮개의 디자인은 서울시의 논리와는 다른, 좀 더 상식적인 차원으로 이뤄져야 한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09212620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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