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기고]사법시험 존치, 학벌주의 완화 / 김동훈(법학부) 교수

최근 로스쿨협의회는 언론을 통해 소수 특정학교에 집중돼 있던 “사법권력의 분산”을 로스쿨 도입의 장점으로 꼽았다. 즉, 사법시험 합격자의 출신 대학은 40개에 불과했는데 로스쿨로 바뀌면서 입학생의 출신대학이 102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국가가 입법을 통해 기존의 권력을 분산한 것은 해방 직후 토지개혁 이후 로스쿨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과연 이것이 그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로스쿨 제도의 성취인가?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기’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25개의 로스쿨이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지만 이들 로스쿨에 엄연한 서열이 매우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기존의 대학서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로스쿨제도 출발 시 학교선정과 인원 할당이라는 것도 공정한 심사를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법과대학 서열에 따라 정해진 인원 2000명을 적당히 배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확고한 로스쿨 서열로 인해 지원자들이 더 높은 서열의 로스쿨 입학을 위해 재수나 삼수를 하는 것도 흔한 일이며 서열이 낮은, 특히 지방 소재의 로스쿨들은 장래마저 매우 불안정하다.

서열이 높은 로스쿨일수록 그 위세는 대단하다. 자타공인 서열 1위인 서울대 로스쿨은 2014년 기준 153명 신입생 중 100명(65.4%)을 자교생 출신으로 선발했다. 현행법상 타교 학부 출신을 3분의 1 이상 의무적으로 뽑도록 되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대는 이 법령에 저촉하지 않는 최대치를 자교 출신으로 충원한 셈이고, 이 제한 규정마저 없었다면 전원을 자교 출신으로 채웠을 법하다. 이외에 주요 로스쿨들의 자교 출신 비율도 50%를 넘는다. 예컨대 연세대는 125명 중 71명(57%), 성균관대는 125명 중 64명(51%)을 자교 출신으로 뽑았다.

즉, 주요 로스쿨들은 로스쿨을 자기 학교의 사유기관으로 전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수의 타교 출신 선발도 대체로 기존의 대학서열에 따라 충원했다. 법학적성시험이니, 면접이니 하며 공정한 선발을 내세우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선발과정에 대해 상식적으로 누구도 공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 더욱이 그 밖의 로스쿨들도 주로 출신학부의 서열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어 무리를 무릅쓰고 지방로스쿨에 인원을 배정해준 취지마저 무색해지고 있다.

로스쿨은 입구의 불공정성뿐만 아니라 출구의 불공정성도 이에 못지않다. 이른바 10대 로펌 입사자의 출신 로스쿨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이 서울 소재의 몇몇 로스쿨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 외의 로스쿨들은 생색내기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최근의 여러 잡음이 말하듯이 여러 인맥이나 집안배경 또는 청탁 등이 작용하기도 한다.

사법시험은 지원자들에게 이른바 ‘패자부활전’으로서 또 한번의 기회를 주는 의미가 있었다. 즉, 출신학부가 서열이 조금 낮더라도 사법시험 합격과 그 성적을 통하여 새로운 성취의 기회와 동기를 부여하였다. 물론 그러한 경우에도 고위직이나 대형 로펌 등에서 출신학부를 많이 고려하는 학벌주의가 상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를 만회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되었다. 

그런데 로스쿨에서는 이러한 길이 거의 막히게 됐고 원색적인 학벌주의만이 횡행하는 고약한 상황이 초래됐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로스쿨 측은 전국 로스쿨에 1명이라도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교 수가 사법시험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는 숫자놀음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맹목의 학벌주의를 완화하는 측면에서라도 시험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사법시험이 ‘희망의 사다리’로서 존속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17205123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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