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인의 삶](4) 화장품에 담긴, 미를 향한 욕망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ㆍ여자의 역사·화장의 역사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신과 악마는 전투를 벌이며, 그 싸움터는 인간의 가슴”이라고 말했다. 미를 신과 악마 중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와 파급력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간파한 대문호의 선언이리라. 간혹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성형수술은 신의 영역일까? 악마의 영역일까? 시술대의 여인들이 묻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사실 모든 아름다움에는 말이 필요 없다. 보는 순간 그냥 감탄이 나온다. 오죽하면 잘생긴 사람에게는 보상을, 못생긴 사람에게는 배상을 받고 싶어 한다는 심리 테스트 결과까지 떠다니랴.

그리스의 목동 파리스가 세 여신의 경합에서 권력과 부를 약속한 헤라, 지혜와 명예를 약속한 아테네를 무시하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던진 바로 그 순간, 남성이 여성에게 원하는 최고의 가치는 미라는 것이 판가름난 것 아닐까? 어쨌거나 이 판결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고, 이후 여성과 남성의 역사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한 여성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남성들의 게임, 혹은 결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장품의 역사는 이런 미를 향한 긴 욕망의 역사이다.

■한국 미인의 역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양볼에 연지를 바른 귀족 여인과 시종들이 등장한다. 신라시대에는 희고 고운 얼굴을 위해 쌀가루 백분을 바르고, 나뭇재를 개어서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붉게 칠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상적인 미인상이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문의 대를 잇는 데 유리한 후덕한 여인상과 낭창한 허리에 작은 얼굴, 사뿐사뿐 걷는 기녀나 궁녀 등의 이미지를 지닌 여성이다. 물론 신윤복의 미인도는 후자의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리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한 듯 여기서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고정관념이 굳어졌다고 한다. 전통시대의 화장품은 분대라고 불렸는데, 쌀가루인 ‘백분’, 홍화로 만든 붉은‘연지’, 눈썹을 그리기 위한 ‘눈썹먹’의 세 가지로 대표된다.


일제강점기에 가식을 의미하는 화장품이라는 단어가 들어오면서 분대라는 명칭은 사라졌다. 또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을 의미하는 박래품 중 서양분이 여성들의 애를 닳게 했는데, 명성황후는 러시아제 화장품을 즐겨 썼다고 한다. 영육일체설을 숭상한 우리 조상들의 하얀 피부를 향한 욕망은 서구에 대한 로망과 결합해 더욱 견고해졌고, 이는 박가분(朴家粉)에 와서 그 정점을 이룬다. 1915년부터 생산된 박가분은 1918년 조선 화장품 등록 제1호 관허를 받았다. 이 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서가분, 장가분, 서울분 등 모방품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화장품 양산을 촉발했지만, 1937년대 납중독설로 사라지고 말았다. 1930년대 중반에는 “허리우드 양키껄들의 올밤이 같은 눈의 유행계”라는 신문기사를 볼 때, 할리우드 미녀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해방 이후 미군정 등 미국 문화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었다. 1920년대와 1960년대 인형의 변화는 이런 경향을 선명히 보여준다.

■매분구에서 뷰티 레이디까지 

그럼 해방 이후 한국 여인들이 납작한 얼굴, 홑꺼풀 눈을 벗어나 서구 미인이 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단연 화장품이었고, 그 사용 방식은 여성 잡지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시로 게재되었다. 하지만 한국 화장품은 방판, 즉 방문판매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1970년대 전체 화장품 매출의 90%까지 차지했고, 현재도 잔존하고 있는 방판의 역사는 한국 여성 얼굴 디자인의 역사와 겹친다. 화장품 판매원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숙종 때 설화에도 나온다. 여기에 매분구라는 명칭이 발견되는데 이들은 방물장수였다. 지방관청이 중앙에, 조선이 중국에 바치던 방물(方物)에서 유래한 방물장수는 대부분 서울의 육의전에서 물건을 사서 전국을 떠돌며 팔던 상인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러시아인 방물장수가 특히 인기가 있었는데,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풍각쟁이 행색의 이 상인들이 마을에 이르러 북을 둥둥 치면 각 집에서 조그만 통을 들고 나오고, 거기에 크림을 분배해 팔았기에 ‘동동구리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초 화장품 허가업소는 130여개였다. 이들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 37만명을 고용해 1962년 성미 쥬리아를 필두로 대대적으로 외상, 할부가 특징인 방판을 시작했다. 방물장수의 후신인 것이다. 당시 이를 통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 아모레 화장품의 경우 고객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입력한 카드에 전국을 바둑판같이 세세하게 쪼갠 블록지도를 작성했다. 그 정보가 아주 세밀해 실무자들이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국가 정보기관에서는 이 자료를 간첩 색출에까지 이용했다고 한다.

이 세밀한 고객 정보 시스템은 일종의 파놉티콘적 기제였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1786년 중앙의 탑에서 모든 개인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을 구상하고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뜻하는 접두사 판(pan)과 렌즈를 뜻하는 옵티컬의 합성어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중세의 천부적 규율이 사라진 근현대에서는 이러한 파놉티콘 시스템이 일상의 통제 기제로 쓰인다고 했다. 해방 후 한국 여인들의 얼굴을 디자인한 첫 번째 공신은 이런 파놉티콘 지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성공시킨 것은 결국 이 시각에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투사한 여성들의 선택이었다.

■시놉티콘의 욕망이 만들어낸 여인의 얼굴

1971년 조선호텔에서 열린 국내 최초의 메이크업 캠페인에는 언론계, 문화계와 여성단체장들이 참석했다. 여기서 눈과 입술의 색조 화장을 중심으로 한 화장법이 직접 시연되었다. 그동안 이미지로만 충족되던 여성들의 훔쳐보기 욕망이 현실에서 구체화한 사례다. 이 시연 이후 “눈 위에, 입술 위에”라는 슬로건으로 짙은 색조화장의 시대가 거의 20년간 지속된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1980년 컬러TV의 등장은 이런 추세를 더욱 부추겼다. 유지인, 장미희, 김희애 등 당대 20대의 미녀들이 “다홍빛 입술, 초록빛 눈매” “색과 색이 모여지는 또 다른 입술” 등 색조화장을 강조하는 카피와 함께 전국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강렬한 입술, 볼터치, 짙은 눈 화장의 삼박자를 통해 1930년대 ‘올밤이’ 같은 눈, 1970년대 인형의 얼굴이 한국 여인들의 얼굴에서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이 시대 광고를 본 요즘 20대 여성은 “이 당시 정말 섹시했네”라고 감탄한다. 참으로 짙고 짙었던, 획일적 화장법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는 파놉티콘적 시스템에 의해 공급된 상품이 시놉티콘적 욕망을 통해 소비되는 시대의 전주였다.

단일한 주체가 다수를 보는 시스템을 파놉티콘이라고 한다면, 시놉티콘은 반대로 다수가 하나를 보는 방식을 말한다. 토머스 메티슨이 명명한 것으로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의견이 교환되면서 소수의 권력을 감시할 수 있다는 역감시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윤리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선택받은 그들, 즉 관찰되는 소수 명사들은 텔레비전과 광고를 통해 존경받는 동시에 갈망되고, 지배하는 대신에 충성심을 획득한다”고 했다. 결국 그 짙은 화장법은 모델, 판매원들의 교육, 한국 여인네들의 미를 향한 시놉티콘적 욕망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방문판매는 1990년대 화장품 시장 개방, 대형 할인점, 기능성 화장품의 등장 등으로 퇴조해가고, 화장법도 다양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방판 아줌마들은 젊은 ‘뷰티 레이디’로 바뀌어 동아시아의 여성들에게 화장법을 지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1970~1980년대 한국의 화장법이 그대로 보인다는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화장품 용기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프랑스 에펠탑 옆에 가면 인류사 박물관인 옴므(Homme) 뮤지엄이 있다. 칼의 변천 코너에는 석제칼, 청동칼, 철기칼, 스테인리스 칼과 스위스 아미 나이프, 마지막에 플라스틱 일회용 칼이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 시대의 칼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화장품 용기의 역사도 이와 같이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돌합을 지나 고려청자, 백자, 은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인 이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 시대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도 만만치 않다. 반짝이는 까망의 샤넬, 무광택의 검정이 시크한 나르스, 날카롭고 각진 바비 브라운과 안나 수이의 호사스러운 블랙과 장식성을 보면 똑같은 업종에서 검은색의 패키지 변주가 어찌 저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온다. 수에무라의 미니멀리즘, 록시땅의 파랑과 노랑 도자기 또한 미의 전령임을 선언하며, 백화점 진열대 위에서 앙탈진 수위 다툼을 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의 용기 디자인은 해방 후 70년간 별로 변화가 없다가, 근래에 중국 시장을 겨냥해 금빛과 왕후 장식의 과도한 디자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쉽지만 이 경쟁의 자리에 낄 수 없어 보인다. 한국의 화장품은 현재 기술은 아시아 최고일지 모르지만, 그 기술을 담는 패키지 디자인은 영영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성형과 박피, 개인 맞춤형 화장품, 제약회사의 시장 진입 등 또 다른 화장 기술의 신세대로 이동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23192318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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