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반도포커스-이원덕] 동북아 세력 전이와 한·일관계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21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는 바야흐로 미·중 양강 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상대적 국력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동북아에서의 세력을 유지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보면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 덕택에 20년 만에 거의 20배로 팽창해 현재 약 9조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반면 일본은 20년째 5조 달러 규모에 머물러 있다. 경제 규모 면에서 중·일 간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은 2010년의 일인데,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이 120년 전 청일전쟁에 패배한 이래 일본을 앞지른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2000년의 긴 역사에서 보면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걸친 150년의 기간은 어쩌면 예외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이 예외의 시대에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해 세계 열강 국가에 굴종을 강요당하며 강대국의 지위를 박탈당한 반면 일본은 20세기 전반기에는 군사대국으로, 그 후반기에는 경제대국으로서 위용을 떨쳤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일본은 심각한 재정 적자, 성장동력의 상대적 상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상징되는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힘의 상대적 저하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일본은 예외의 150년을 경과하여 본래의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은 군사적 보통국가화를 추구하고 있다. 당분간 일본은 중국의 압력에 견딜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중(對中) 협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대미(對美) 동맹을 강화하고 안보 역량을 증진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중국과의 동중국해 영토분쟁, 역사분쟁 등을 기화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강성 안보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질서의 변동 속에서 가장 큰 심각한 전략적 딜레마를 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하고,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근접해 있으며, 미·중 갈등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끊임없는 대남 도발에 직면하고 있으며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미 동맹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또한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의 입장은 미국의 대중 전략과도 부딪칠 수 있고, 일본의 대중 전략과도 충돌할 수 있다. 

대미, 대중 외교와 더불어 대일(對日) 외교는 한국 대외 전략의 핵심 과제다. 미·중 양강 구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닌 위상과 역할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일본 변수의 관리 역시 중요하다. 대일 외교 방향은 역사 마찰을 극복하고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공동 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군사·이념 대결을 벌이던 냉전 하의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과 대결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를 통해 유럽공동체 건설의 주역을 완수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21세기 동북아의 미·중 양강 구도에 끼어 있는 한·일 관계의 미래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와 더불어 북한 문제와 통일을 염두에 둔 일본과의 관계 정립이야말로 대일 외교의 핵심적 고려 요소다. 일본은 핵,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관해서 보면 한국과 더불어 최대 이해당사국이다. 또한 장차 일본의 대북 청구권 자금은 북한 지역의 경제재건 및 인프라 재구축 과정에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는 한국이 주도하는 시장민주주의, 비핵화 통일이고 그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일본이 통일을 견제, 반대하기는커녕 강력하게 지지, 협력하는 세력이 될 수 있다. 

이원덕 국제학부 국민대 교수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62561&code=11171395&cp=nv

이전글 신촌 연세로 윈드 오케스트라 콘서트 / 국민대 음악학부
다음글 [충무로에서]잘못된 '외주화' 서울메트로 뿐인가 / 이은형(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