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그래도 희망이 있을 거야. 서로 아끼고 힘을 합한다면 / 유진룡(행정대학원) 석좌교수

나는 여행하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것은 내가 지낸 시간의 사소한 기록까지도 남기고 싶어서이지만, 솔직히 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에 실망하고 지워주길 원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세상에는 ‘뽀샵’ 처리를 한 사진이나, 교묘하게 미화된 셀카 사진만 남아서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요즘 나는 제목을 자주 떠올리며 꺼내보는 책이 있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오래된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심해져가기만 하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후안무치와 이기심에 질리며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준 상처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행동을 뻔뻔하게 지속하는 모습은 진실이 아닌 뽀샵 처리된 셀카 사진만 들여다보는 것과 같지 않은가? 나 하나라도 우선, 그리고 우리 사회가 모두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한다.

로이터 사진전을 보며 나는 피할 수 없었던 현실을 기억하며 내내 가슴 아팠고 우울했다. 민주화를 이루고 자유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피를 흘리던 모습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 살상, 재해, 빈곤, 질병의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사진들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어둠이 언제나 걷힐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시장을 나서기 전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학교 급식이 어려워 점심을 먹으러 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이지만, 나에게는 이들이 마치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의 상징같이 느껴졌다.

이들은 서로 다정하게 껴안고 가며 아마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우리가 서로 아끼고 힘을 합한다면. 거짓말쟁이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을 다시 구할 수 있을 거야.”

유진룡/국민대 석좌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563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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