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온의 소리] 배려 천국 /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지는 가위바위보’라는 놀이가 있다. 손가락이 없는 어린 아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아버지가 항상 가위를 내준 데서 연유한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배려가 눈물겹다. 내 소통 수업에서는 ‘암흑산책’이란 걸 한다. 눈 가린 다른 사람을 말로 인도해서 정해진 코스를 돌아오는 거다.

인도자의 목소리에만 의지해 계단 나무 시설물이 있는 길을 눈 가리고 걷기란 정말 무서운 일이다. 가끔 작은 사고도 난다. 인도자의 ‘왼쪽’이, 눈 가린 사람에게는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인도자가 “저쪽으로 쭉 가세요!”라고 말하지만, 눈 가린 사람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야 소통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외국인이 혀를 굴려가며 빨리 말할 때 우리는 퍽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짧게 말해준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은 어느 병사가 전장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고 감동했다고 한다. “사전 안 찾아보고 읽을 수 있게 책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글을 쓸 때 독자를 위해 명확하고 간결하고 쉽게 쓰려 애를 쓴다.

필자가 글을 다듬을수록 독자는 그만큼 더 편히 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왜 341개의 글자, 93개의 낱말을 한 문장으로 엮어놨을까. 배려 빵점이다. 공공장소에 비치된 안내문, 도로표지판 등 공공 시각물 중에도 표현이 불명확하고 어렵고 복잡한 것이 많다. 게다가 친절하지 않다. 설득 과정은 생략하고 다짜고짜 협박부터 하니 보는 이들은 짜증부터 난다. 이런 거 바로잡는 일 맡겨주면 무료로 봉사하고 싶다.

추운 겨울날, 김 이병이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소대장이 한마디 건넨다. “김 이병,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하지그래?” 그 말을 듣고 취사장에 갔지만 군기 빠졌다고 꾸중만 듣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중대장이 소대장과 같은 말만 하고 지나갔다. 그러던 중 선임하사가 지나가다가 말했다.

“김 이병, 취사장에 가서 더운물 좀 받아와. 나 세수 좀 하게.” 김 이병은 취사장에 가서 선임하사 지시라며 더운물을 받아왔다. 그러자 선임하사가 말했다. “그 물로 빨래를 해라. 양은 많지 않겠지만 손은 녹일 수 있을 거야.”

누군가 나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걸 채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 강의하거나 학생들이 발표할 때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 내가 강의할 때 누군가 내 사진을 찍어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또 수업 전후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학생들이 내게 인사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외부 출강 시 앞 시간 강의가 늦게 끝나도 나는 제시간에 강의를 끝내준다. 수강생과 다음 시간 강사를 위해서다. 결혼식 주례사도 5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객을 위해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힘 가진 이들의 횡포로 많은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말씀을 황금률로 여기는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태도를 보자. 예배당에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나. 강대상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나. 점자성경은 비치돼 있나. 예배 중 수화 통역은 하고 있나. 우리나라 인구 중 장애인이 5∼10%라는데 우리 교회 교인 중 장애인은 몇 %나 되나. 교회 밖에서는 이미 시각장애인, 한센인, 지체장애인이라 하는데 왜 성경은 여전히 절뚝발이, 절름발이, 소경, 맹인, 벙어리, 귀머거리, 곰배팔이, 앉은뱅이, 문둥병자라고 하는가.

설교나 기도 중에 건강이 복임을 강조한다. 그럼 장애나 병은 벌이고 화인가. 그뿐 아니라 ‘바보’ ‘대머리’ ‘꼽추’ ‘난쟁이’ ‘치매’ ‘암’ 같은 장애나 병 이름을 쉽게 들먹이기도 한다. 당사자는 얼마나 아플까. 장애인의 90%가 후천성임을 왜 모르나. 배려 빵점이다.

내가 싫은 건 상대방도 싫고, 내가 불편한 건 상대방도 불편하다. 지하철 임산부석 비워주기,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기, 백팩 안고 버스 타기, 전철에서 두 발 모으고 앉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정보 보내지 않기, 급한 차에 길 양보하기, 주차 바르게 하기, 뒷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기,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기, 화장지 다 쓰지 말고 조금 남겨두기…. 이런 게 배려다. 제발 다른 사람 입장을 좀 생각해주자. 배려가 넘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의용 (국민대 교수·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38245&code=23111413&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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