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청사초롱-이창현]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의 기록 / 이창현(언론정보학부) 교수

영화제의 시대다. 다양한 영화제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건다. 그런 면에서 영화제는 영화로 사람을 연결해 생각을 확산하는 미디어다. 여성영화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발하면서 성평등 사회를 지향하고, 환경영화제는 다양한 환경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면서 환경 문제 해결에 힘을 모은다. 영화제의 이야기가 사회 변화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15번째를 맞는 서울환경영화제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한 영화제로서 우리에게 기후변화, 미세먼지, 핵 문제 등 다양한 환경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번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영화 ‘태양의 덮개’(사토 후토시 감독)를 인상 깊게 보았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간 나오토 전 총리는 핵발전소 폭발이라는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일본 붕괴’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고민을 보여준다. 영화제 측에서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논하기 위해 후쿠시마 사고 때 총리였던 간 나오토 전 총리와 다치바나 다미요시 영화제작자를 초대해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원전은 인간에게 필요 없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대지진 전까지는 일본에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 신화에 젖어 있었다”고 개인적 성찰부터 한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을 일본에서 없애자. 세계에서 없애자”는 말을 하면서 반핵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전직 일본 총리가 다시금 한국의 극장에 나타나 반핵 관련 이야기를 이어가는 미디어 교차적 상황에서 관객들은 뜨거운 논쟁을 이어갔다.

그날 나는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쓴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를 선물로 받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수습까지 총리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총리로서 자신의 사고 대응 기록을 정리하면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했는지를 서술했다”고 하면서 “이 사고를 인류의 교훈으로 받아들여 미래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이 우리의 책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정치인은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고 그것을 후세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관객과의 대화 이후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을지로 3가 뒷골목길에 있는 호프집으로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원로 정치인부터 원전 마피아 등 이해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미래세대를 위한 새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후쿠시마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 것도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어떠한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역대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재임 시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 4대강 사업, 세월호 사건 등에 대한 성찰의 기록을 남기고 그것으로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거 대통령들의 성찰도 없고, 솔직한 기록도 없다.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회고록이 있을 뿐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전두환 회고록과, 4대강을 미화하는 MB 회고록 등이 그 예다. 그리고 촛불 이후에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주변 사람들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성찰적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촛불의 노래가 무색한 지경이다.

정치는 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려면 올바른 기록이 있어야 한다. 원로 정치인부터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찰적 기록을 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한 간 나오토 전 총리의 모습과 같이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겨야 역사가 이것을 토대로 발전할 수 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6807&code=11171362&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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