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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재활과 과학, 이렇게 발전했다 / 이기광(체육학부) 교수


프로야구 선수 계약 규모가 100억원이 넘었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돈이 든다. 

한편으로 프로야구 선수는 늘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경영의 관점에서 부상이라는 리스크를 피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육성'이라는 단어가 야구계에서 중시되는 것처럼 기존 선수들의 기량 향상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영역은 일부 지도자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트레이너들의 과학적 전문성은 충분한가. 구단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고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지난 11일 분당의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메이저리그와 국내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MLB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부상 예방 및 재활 프로그램'이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선수는 단 1%라도 경기력을 더 끌어올리려는 욕망이 있다. 구단은 부상 선수를 최소로 하면서 성공적인 시즌을 치르기를 희망한다. 이 욕망과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훈련 프로그램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찰스 레든 박사는 신시내티 레즈의 스포츠과학팀 디렉터다. 그는 선발투수 등판 뒤 5일 동안의 루틴을 어떻게 치르는지 설명했다. 레즈는 과거와는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어깨 회전 근육 강화에 치중한 웨이트트레이닝, 장거리달리기, 평지 피칭 등이 전통적인 루틴이었다. 지금은 견갑골 안정화와 경기 뒤 줄어든 어깨 관절 운동 범위 회복 훈련, 손상된 생체 조직 치유를 위한 회복 장비 등을 활용하고 있다. 과거엔 근골격계 중심의 회복이 위주였다면 지금은 신경계 보호도 중시한다. 기존에 해 온 것들에 대해 '왜 하는가?' '과학적인 근거는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투구 동작과 구질에 대한 생체역학적 분석, 투수의 관절 가동 범위, 근육의 강직 정도와 불균형 테스트, 적절한 수면과 영양 공급, 피로 회복을 위한 다양한 첨단 장비 등을 소개했다. 특히 통증이나 피로를 수반한 상태에서는 투구 시 부상 위험성이 36배나 증가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귀도 라이시젬은 캔자스시티 로열스, 텍사스 레인저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선수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팔꿈치 부상에서 신경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미존 수술'은 과거 척골신경을 근육 안쪽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시술됐다. 그는 "이 방법으로 수술한 투수의 68%만 수술 전 기량으로 돌아왔고, 21%가 수술 후 척골신경 증후군을 겪었으며, 그중 12.5%가 재수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반면 "근육 내 척골신경 전이법을 사용하지 않는 새 방법으로 수술한 경우 82%가 수술 전 기량을 회복했고, 5%만이 척골신경 증후군을 겪었으며, 재수술한 사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버스에 탄 선수가 팔꿈치를 괴고 잠을 청하는지 관찰하라"고 했다. 이 경우 척골신경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세를 교정하는 것만으로 팔꿈치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척골신경 편향 테스트 방법과 손쉽게 처치할 수 있는 테크닉도 소개했다. 실제 이 방법으로 볼티모어 투수 다수를 팔꿈치 통증에서 해방시켰다. 이어 스카우트의 관점에서 "경추신경 손상은 추후 팔꿈치 통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관련 병력이나 투구 메커니즘 분석이 진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항공우주공학 박사인 제이슨 셔윈은 뉴욕의 스타트업 기업 deCervo 대표이사로, 아주 짧은 순간에 의사 결정을 할 때 뇌에 나타난 이미지를 분석하는 전문가다. 야구에서 타격이 이런 '아주 짧은 순간의 의사 결정'이다. 그는 전공 분야인 뇌과학을 활용해 타자의 선구안을 평가하고 향상시키는 목적의 제품을 개발했다. 타자는 투구의 궤적을 지켜보며 볼과 스트라이크, 구종을 예측해 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한다. 이 판단력을 뇌파 신호를 분석해 측정하고, 가상현실이나 모바일 기기로 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트레이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현재 일부 메이저리그 구단과 여러 학교 야구부에서 쓰이고 있다.

셔윈은 모바일용 선구안 향상 앱으로 훈련한 메이저리그 타자 16명의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투수 손을 떠난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단해 스윙을 시작하는 반응시간은 훈련 전보다 10.6% 정도 빨라졌다. 뇌파 신호 분석을 통해 뇌에서 스윙을 결정하는 시간 또한 8.91% 정도 향상됐다. 결정 시점의 일관성 역시 19.2% 향상됐다. 셔윈의 회사는 투구 궤적 데이터 20만 개, 뇌파신호 데이터 2600만 개를 기반으로 머신 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해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차의과학대 스포츠의학대학원 원장인 홍정기 교수는 LA 다저스의 첫 여성 수석 트레이너인 수 팔소니의 사례를 소개했다. 2013년 다저스 주전 선수들은 25차례나 부상자 명단에 등록됐고, 팔소니는 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홍 교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선수들이 지나치게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언급했다. 투수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몸을 회전시키며 공을 던진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비대해진 근육은 오히려 인대나 힘줄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야구선수에게는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무거운 중량으로 하는 단순한 트레이닝보다 가벼운 중량을 빠른 속도로 들어 올리는 파워 트레이닝, 근육의 길이를 살짝 늘였다가 짧게 수축시키며 근육 비대 없이 파워를 증가시키는 SSC(근육과 힘줄이 마치 고무줄처럼 힘을 저장했다가 수축하면서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리)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투구 메커니즘 분석에 근거해 투수에게 요구되는 관절의 안정성과 운동성을 명확히 규명해 각 관절 기능에 적합한 다양한 트레이닝 방법을 제안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과학기술은 프로스포츠산업에 실제 적용돼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산업 규모가 커질수록 리스크 회피를 위한 새로운 기술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 필요성은 점점 커진다. 이런 분야에서 발달한 기술이 대중화되면 나아가 보통 사람의 건강과 행복까지 증진시킬 수 있다. 아직 우리 야구는 선수와 감독이 아닌 조력자, 가령 트레이너들의 위상이 낮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분야 종사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이기광(국민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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