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온의 소리] 痛할래, 通할래? /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허준의 동의보감에 이런 말이 나온다. ‘通卽不痛(통즉불통), 不通卽痛(불통즉통).’ 사람 몸의 혈관에 막힌 것을 통하게 해주면 아픈 것이 없어지고, 막혀서 통하지 아니하면 통증이 생긴다는 뜻이다. 어찌 사람의 몸만 그렇겠는가. 요즘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오는 아픔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가정 직장교회 사회에서 마음 놓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자칫 큰 갈등이 일어날까봐서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늘 새로워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더 막히고 관계는 더 끊어지는 것 같다.
 
말하기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기술이고, 듣기는 다른 사람을 아는 기술이다. 말하기를 잘해야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듣기를 잘해야 남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다. 동굴 속에서 혼자 산다면 몰라도 광장에 나와 여럿이 함께 살아가려면 말하고 듣는 도구(tool)부터 잘 다듬어놔야 한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라는 말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더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K 데이비스의 ‘훌륭한 청취를 위한 10계명’에는 제1계명과 제10계명이 똑같다. “말하지 말라. 말하려고 하면 들리지 않고 말하는 동안은 듣지 못한다.” 

요즘 동물병원에 우울증으로 입원하는 반려견이 있다고 한다.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사람이 아님을 확인한 후 생긴 병이란다. 듣기는 거울과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내 모습을 알 수 있다. 모두가 나를 잘 아는데 나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건 평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밖에서 내 흉을 보는 부하직원의 목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는 부하들에게 비친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듣는 데 조금만 더 비중을 둔다면 우리는 거기에 비친 내 모습들로 모자이크를 만들어볼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 수 있다. 

어떤 은퇴교수가 길에서 만난 후배 교수에게 차 한 잔을 사주며 단단히 당부를 하더란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니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그 점을 조심하라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혼자 한 시간 동안이나 하더라는…. ‘경청(傾聽)’의 ‘傾’은 ‘기울 경’자이다. 상대방을 향해 귀를,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聽’은 ‘王’ ‘耳’ ‘目’ ‘心’을 조합한 글자다.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향하고 마음도 읽으라는 뜻이다.

요즘 우리들의 대화에서 이런 모습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혼자 말하기,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자르기, 시선을 돌리고 듣기, 딴 짓을 하며 듣기, 건성으로 듣기를 많이 한다. 대학의 교실도 일방적으로 강의만 하는 교수, 몰라도 질문을 하지 않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로 인해 불통 수업을 면치 못하는 수가 많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어떤가. 기도하는 이들은 많지만 다들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거나 그나마 하나님의 응답은 듣지 않고 자기 ‘청구서’ 내용만 외쳐대고 일어선다. 과연 이런 기도가 통할 수 있을까.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자기 모습도 발견하고 상대방의 상태도 읽고 필요에 답할 수 있다. 목사는 장로와 성도들에게, 장로는 목사와 성도들에게, 장년은 청년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장은 사원들에게, 국회의원은 국민들에게,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예배당을 새로 지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커다란 커피숍을 마련했다. 얼마 후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정작 주민들이 원하는 건 커피숍이 아니라 탁아소였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내게 필요한 것이 반드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일 수는 없다. 그걸 깨달아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듣지 않고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걸 소통이라 할 수 없고, 주고 싶은 걸 일방적으로 주는 걸 자선이라 할 수 없다. 교회도 지역사회 주민들과 전체 국민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상태와 필요가 어떤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 자체가 이웃 사랑이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지금 우리는 말이 너무 통하지 않아 아파하고 있다. 좀 듣자!

이의용 국민대(교양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98422&code=23111413&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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